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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는 전 세계가 반도체에 초집중한 한 해였습니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까지 나서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고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나서면서 뜨거운 패권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건데요. 각국 정부의 파격적인 세액공제와 보조금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대규모 공장 건설을 속속 예고했었죠.
올해는 패권 경쟁의 수혜를 입은 글로벌 반도체 팹(생산 공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 흐름 역시 더욱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인텔 CEO “공급망 재편 필요” 언급…반도체, 판 바뀐다
19일(현지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패트릭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불과 30년 전에 미국과 유럽이 세계 칩(반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했었지만 이제 아시아가 이를 차지했다”며 “이를 고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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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 경쟁의 핵심은 ‘탈(脫)중국’입니다. 겔싱어 CEO가 언급했듯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은 아시아, 특히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를 많이 만들고 많이 팔며, 많이 사는 국가로 꼽힙니다. 거대한 산업 기반에 더해 ‘반도체 굴기’를 천명한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단순히 중국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공급망 패권을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한 조치도 있죠.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안을 마련해 미국 땅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들에 5년간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주고, 파격적인 세액 공제를 제공했습니다.
미국을 본 글로벌 반도체 강국들도 속속 비슷한 혜택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지난해 말 1조 3000억엔(약 12조 3500억원) 규모 반도체 관련 예산을 배정해 연구개발(R&D)과 공장 건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430억유로(약 60조원)를 반도체 산업 육성에 투입하는 내용의 유럽반도체법 의회 통과를 남겨놓고 있고, 유럽 국가별 보조금도 지원 중이죠.
서쪽으로 움직이는 반도체 패권…韓 전략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속속 옮긴 이유입니다.
당장 대만 파운드리 전문기업 TSMC는 지난해 말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공장에서 장비 반입식을 열고 첨단 공정 반도체 생산을 예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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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빠른 속도로 새로 짜이고 있습니다. 파격적인 혜택과 전방위적 압박에 글로벌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 결과물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유럽과 일본으로도 눈을 돌리는 분위기입니다. 미국 기업인 인텔이 낙점한 곳은 독일입니다. 인텔은 지난해 3월부터 독일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 오는 2027년 가동하기 위한 협의를 이어 왔습니다. 독일 정부와 EU가 제공할 보조금도 70억유로에 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TSMC는 일본에 반도체 R&D센터를 지은 상태입니다. 지난해 6월 개소한 R&D센터의 경우 사업비 370억엔 중 절반(190억엔)을 일본 정부가 부담했습니다. 최근에는 독일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달 초 열린 실적발표 간담회에서 웨이저자 TSMC CEO가 “유럽에서 자동차 기술에 특화된 전문 반도체 공장을 신설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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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만으로 K-반도체의 위상을 지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전 세계 정부는 현지 제조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반도체 칩은 전략적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도 한 발 더 나아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제언이 나옵니다. 인적 자원이든 기업 혜택이든 더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규석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법인세 인하, R&D 및 시설투자세액 공제율 인상 등 최소한 해외 주요국 수준의 지원을 통해 한국 반도체 기업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각국 정부의 유혹(?)을 막아낼 묘수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