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1일 한미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은 한미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인 만큼 한미 양 국은 규범에 기반한 이 지역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갈 것”이라면서 “그 첫 걸음은 IPEF 참여”라고 밝혔다. IPEF 창립 멤버 참여를 공식화한 윤 대통령은 “우리의 역내 기여와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도 짜겠다”고 부연했다.
IPEF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처음 언급한 일종의 경제협의체로, 미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아세안(동남아 10개국) 등 인도·태평양지역을 아우른다. 우리 정부는 미국 측의 IPEF 참여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왔고, 이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참여를 확정했다.
미국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은 공급망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협력 강화를 천명한 반도체만 봐도 미국(전 공정)-한국(메모리 반도체 설계·생산)-대만(시스템 반도체 설계·생산)-일본(제조장비)-말레이시아(후 공정) 등으로 이어지는 다자간 협력체계가 갖춰져 있다. 아세안(ASEAN)과 인도에선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전자·전기 제조업 생산도 활발하다.
국제통상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우리나라 총수출의 절반 가량인 48.6%가 해외 공급망과 관련돼 있는데, 이는 미국(37%), 일본(35%)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준”이라며 “IPEF에 창립 멤버로 참여해 우리나라의 지분을 최대한 챙겨 공급망 안정을 꾀하는 것이 국익 관점에서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고 말했다.
IPEF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협력 강화를 목표로 △무역 △공급망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조세·반부패 등 4개 분야의 국제 규범을 만들 계획이다. 미국은 IPEF 참여국들이 4개 분야에 모두 참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무역과 공급망 분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논의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프라·청정에너지·탈탄소 분야는 우리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 조세·반부패 분야는 북한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 연구위원은 “한국이 디지털 부문에서 상당한 역량을 갖고 있는 만큼 이 부분의 규범 세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향후 성장 동력의 한 축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국이 우리를 향해 보복 조치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 교수는 “중국이 우리 정부에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이상 행동을 취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국제 규범을 만들기 위해 여러 국가와 모여 논의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보복에 나서기에는 명분이 너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건 사실 중국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서 연구위원은 “미국도 IPEF가 추구하는 것이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리커플링(재동조화)이라고 밝히고 있다”며 “대(對)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지만 현재 상태로는 특정 국가를 배제한다는 배타적 성격이 명시적이지 않은 만큼 중국이 참여 국가에 대해 보복 조치에 나설 명분과 근거가 약하다”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