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다름 아닌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 세간에 알려진 이른바 ‘골프채 아내 살해’ 사건이다.
잔혹한 방법으로 아내를 때린 가정폭력은 용서할 수 없는 중대 범죄일뿐더러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점에서 유 전 의장에 대해 살인죄 적용은 불가피해보였다. 처음 사건을 수사한 김포경찰서는 당초 상해치사 혐의로 유 전 의장을 구속했다가 이후 살인으로 죄명을 바꿔 검찰에 송치했고, 인천지검 역시 살인 혐의로 유 전 의장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항소심까지 이른 재판 과정에서 살인 혐의에 대한 다른 판단이 나왔다. 1심 재판부는 이같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고 유 전 의장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같은 원심을 파기하고 살인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고 유 전 의장에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살인이 아니라는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 이번 주 서초동 결정적 장면이다.
|
◇그는 살인할 ‘고의’가 있었는가
서울고법 형사합의1부 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3일 유 전 의장의 항소심 선고에 앞서 다소 긴 판결 이유를 설명하고 나섰다. 이번 선고를 앞두고 정 부장판사 역시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정 부장판사는 “유 전 의장에게 상해의 고의를 넘어 미필적으로나마 아내를 살해할 범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살인을 하려는 고의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면 유죄가 의심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른 설명이다.
◇살인 부른 불륜?…폭행 후 죽게 방치한 걸까?
정 부장판사는 먼저 “범행의 동기와 범행 후 행동에서 유 전 의장에게 살인 고의성이 없었다는 정황이 다소 있다”고 지적했다.
유 전 의장은 2000년과 2007년 이미 아내의 두 차례 불륜을 겪었고 지난해 또 다른 남자와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아내를 용서하고 결혼생활을 지속해 온 만큼 불륜이 살인의 동기가 되지 않았다고 봤다. 실제로 유 전 의장은 세 번째 불륜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아내와 자주 전화를 했고, 범행 직전 결혼기념일에는 아내와 여행을 가기도 했다.
정 부장판사는 “유 전 의장은 아내가 만취한 상태에서 깨진 소주병을 들고 자해하겠다고 위협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는데, 범행 현장에서 깨진 소주병이 발견됐고 유 전 의장의 양 손에 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상처도 발견됐다는 점에서 자해 시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폭행 이후 유 전 의장이 아내를 죽도록 방치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 전 의장은 모친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고, 범행 당일 오후 6시 모친이 귀가 예정이었음에도 범행을 은폐하려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단지 아파하는 아내를 침대에 눕히고 더러워진 아내의 옷을 갈아입힌 뒤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는 정도였다. 이후 아내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느낀 유 전 의장은 119구급대에 신고하기도 했다.
특히 아내의 사망 원인은 외상에 의한 이차성 쇼크인 것으로 파악됐는데, 의료인이 아닌 유 전 의장이 사망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학적 소견도 뒷받침됐다. 외상에 의한 이차성 쇼크란 구타로 인해 발생한 광범위한 멍에 의해 순환혈액량이 감소해 주요 기관의 기능에 장애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한 법의관은 ‘의료인들도 잘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아 일반인이 이를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
◇그렇다면 골프채까지 휘두른 것은 살인 의도가 아닌가?
범행 당시 유 전 의장이 골프채를 사전에 준비해 아내에게 휘둘렀다면, 이에 더해 골프채 헤드 부분으로 아내를 때렸다면 살인 혐의를 피치 못했을 것이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해당 골프채는 사전에 준비된 것도, 또 헤드로 아내를 때리지도 않았다고 봤다.
정 부장판사는 “가족들의 진술에 따르면 유 전 의장은 평소 골프채 1~2개를 주방 또는 현관 근처 벽에 세워뒀으며, 범행에 사용하기 위해 골프채를 미리 준비한 것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범행 당시 주방에는 식칼, 깨진 소주병 등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물건들이 손에 쉽게 잡힐 만한 거리에 있었는데, 유 전 의장에게 살해의 범의가 있었다면 위와 같은 물건들을 사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여러 법의관의 소견에 비춰 아내의 몸에 골프채 헤드 부위로 맞은 상처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아내의 하체 부분에 막대기로 맞았을 때 생기는 중선 출혈이 발견되는 등 유 전 의장은 골프채의 막대기 부분을 회초리처럼 이용해 아내를 때린 것으로 보인다”며 “유 전 의장이 살인의 범의를 갖고 골프채로 아내를 때렸다면 손잡이를 잡고 헤드로 아내를 내리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중형은 불가피
다만 정 부장판사는 상해치사의 권고형인 징역 3~5년보다 무거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가정폭력일뿐더러 죄질 역시 매우 나쁘다는 이유다.
정 부장판사는 “가정폭력은 어떤 이유나 동기에 의한 것이든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없다. 아내의 온몸을 주먹, 발, 골프채 등으로 때려 사망에까지 이르게 한 것으로 그 죄질과 범행 정황이 매우 나쁘다“며 ”비록 유 전 의장에게 살인의 범의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소중하고 존엄한 아내의 생명을 앗아간 유 전 의장에게 상해치사 범행은 어떠한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