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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혼자서 등교하는 게, 친구들이 자신을 빼고 극장에 가는 게 요즘 또래에게 인생이 뒤틀릴 만한 혼란이다. 세월 지나고 나니 그들 중 대부분과 얼굴을 딱히 볼 일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런 관계에서 굳이 상처를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또래와의 관계를 그렇게 치부하기엔 너무 각박한 게 아닌가 싶었다. 일상에서 접하는 학교의 선생님께서 하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대학친구보다, 고교친구보다, 중학친구가 가장 적구나. 과장된 표현이라고 웃고 넘길 말이 아니었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 ‘어린왕자’의 스토리가 떠오른다.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생택쥐베리의 동명소설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우주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구에서 만난 수많은 장미를 보고 혼란을 느낀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향기를 가진 장미는 나에게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너랑 놀 수 없어.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길들여진다(tame)는 게 뭐지?” “관계를 맺는다(establish ties)는 뜻이야. 넌 나에게 아직은 수많은 애와 같은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도 내가 필요 없고. 나도 네겐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지. 하지만, 네가 날 길들이면 우린 서로가 필요해져.”
입학식 당일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고 아이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의 말은 중학교 친구와 관계가 소중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 관계로 인해 뒤틀리는 상처를 받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니 순간마다 어떤 관계든 소중하게 쌓아야 한다. 상처가 생기면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또 다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화 ‘순정’에서 소년소녀들은 약속한다. 어른이 될 때까지 다시 지금 청소년인 이때를 이야기하자고. 그럼 언제쯤일까? 주민등록증이 나오는 스무 살인가? 한 소녀가 대답한다. “어른은 사람 구실을 할 때. 아마 마흔쯤일지 모른다.”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에게 ‘관계’를 다시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지금 만난 인연이 평생 갈지 따지면서 살 필요는 없다. 친구를 위해 쓰는 시간을 쓸모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찌 보면 학연은 관계 혹은 인연 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이니, 오히려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 관계 자체가 아닌 그 관계가 혹 가져올지 모르는 부정적 결과 때문에 그 관계를 숨길 필요도, 끊을 필요도 없다. 다시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빌린다면 “넌 분명히 멋진 어른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