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화인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나

  • 등록 2015-08-10 오전 8:31:48

    수정 2015-08-10 오전 8:31:48

[이데일리 고규대 연예스포츠부 부장] “오직 예술적 완성도로만 영화를 선정하겠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은 배우 강수연(49)의 취임 일성이다.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은 6일 기자간담회를 마친 후 영화기자들과 서울 중구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하면서 못다 한 말도 꺼냈다. 10월 1일 올해 20년째를 맡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사령탑에 이용관 집행위원장과 나란히 오른 것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넘어서 세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데일리가 광복 70년을 맞아 선정위원을 통해 뽑은 ‘한국을 바꾼 70대 제품’에도 이름도 올랐다. 일본의 한 방송인이 “한국 영화가 대학 수준이라면, 일본 영화는 유치원 수준”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이처럼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리매김한 데는 감독, 배우, 시나리오 작가 등의 영화 각 분야에 재능 있는 이들이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아낸 덕분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밖으로, 안으로 도전에 직면했다. 북경영화제, 칭따오영화제, 도쿄영화제 등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성을 위협할 정도로 커가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대한민국 영화제가 아니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고,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영화제라는 게 강수연의 말이다.

안으로는 영화제를 예술로 보지 않고 정치의 하나나 경제 논리로 해석하는 작태가 문제다. 강수연이 2012년 이후 지속된 이용관 집행위원장 1인 체제에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합류한 이유는 부산시와의 타협의 결과물이다. “예술적 완성도”라는 강수연의 표현은 지난해부터 불거진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작 선정 문제, 예산 집행 문제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월호 사건을 영화로 옮긴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부산시 등과 갈등을 벌였다. 부산시가 ‘다이빙벨’ 상영을 놓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말이 돌았고, 정부가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해 사전 검열을 시도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또 영화진흥위원회가 거의 정례화된 영화제 지원금 규모를 반 가까이 삭감하며 또 한 번 진통을 겪었다. 영화인들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적 갈등 양상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지난 2월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타협 결과 공동집행위원장 체제, 부조직위원장 신설, 일자리박람회 개최 등이 등장했다. 물망에 오른 배우 안성기·조재현·강수연과 박광수 감독 중 강수연이 낙점됐다. 부산시가 조재현을 밀었고, 부산국제영화제는 안성기 또는 강수연 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강수연은 저간의 사정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터라 선뜻 공동위원장 직을 수락했다. 영화계에서는 폭넓은 영화계의 인맥이나 강단 있는 성격 등을 비춰 강수연의 선임을 환영하고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강수연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직 그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감독 류승완)에서 광역수사대 서도철 형사(황정민 분)가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내뱉는 명대사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류승완 감독이 평소 강수연이 즐겨 쓰는 이 말을 기억해뒀다 이 영화에 썼다. 류승완 감독은 필자에게 “이춘연 씨네2000 대표를 통해 강수연으로부터 이 말의 사용을 허락받고 시사회에 초청해 감사의 말도 전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대사는 상대적으로 돈과 권력이 없다고 한 인간으로서, 한 명의 직업인으로 자존감을 내려놓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강수연이 술자리에서 건배사처럼 쓸 때는 ‘우리’ 대신 “배우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로 쓴다. 강수연은 197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이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라는 이미지 때문에 CF를 고르는 통에 큰돈을 만지지 못했다. 돈보다는 배우의 자존심, 그리고 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자는 의미도 본인의 평소 생각에서 나왔다.

세계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그 틀이 훼손될까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강수연의 말처럼 폭염 속에서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촬영에 나선 영화인은 자부심, 자존감, 체면으로 똘똘 뭉쳐있다. 부조직위원장 신설 등으로 영화제에 외부의 입김이 가시화된 지금,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의 지혜가 발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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