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팬덤이 정치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건 비단 한국뿐 아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팬덤이 강한 정치인이 대권을 잡는 게 상식이 됐다.
| 하워드 딘 전 미국 버몬트 주(州) 주지사.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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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현재와 비슷한 정치 팬덤을 처음 보여준 ‘원조 스타’는 2004년 미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다. 그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등 선명성 넘치는 공약과 철없어 보이는 언동으로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경선 출마 1년반 전까지만 해도 무명 정치인이었으나 경선 기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64만명의 자원봉사자를 확보했다. 후보 중 가장 많은 4100만달러(약 460억원)의 후원금을 모금했다. 2000년 전후 전 세계를 휩쓴 닷컴 열풍이 그의 약진을 도왔다. 그는 비록 실제 경선에서 단 한 주(州)에서도 이기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며 미완의 돌풍으로 남게 됐다. 딘 신드롬은 그러나 그때까지 보조적 홍보수단으로만 활용해 온 인터넷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딘은 지금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비영리 정치조직 ‘온워드 투게더(Onward Together)’의 지도부로 합류, 당시의 경험을 살리려 하고 있다.
미완에 그친 딘의 시도를 완성시킨 건 오바마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선에 처음 출마한 2007년 출마선언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딴 ‘버락오바마닷컴(barackobama.com)’을 개설했다. 이곳에선 자신의 정책과 행보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지지자들이 온라인에서 이를 토론하고 직접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순식간에 1000만명 이상이 몰렸다. 오바마 캠프는 연계 상품 판매라는 새로운 방식도 도입했다. 오바마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 같은 상품 판매로 4000만달러(약 450억원) 이상의 정치자금을 확보했다. 오바마닷컴은 2012년 재선 때도 활약했다. 특히 ‘트루스팀(Truth Team)’이 두드러졌다. 가짜 뉴스 등 온라인의 부작용이 범람하기 시작했다는 데 착안해 홍보와 네거티브 대응 등 팀을 세분화했고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으로 이어졌다. 선거 막판 오바마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3300만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공화당 후보 밋 롬니는 1200만명에 그쳤다.
| 버락오바마닷컴 메인 페이지.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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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뒤를 이은 계승자는 공교롭게도 맞수인 공화당에서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 주인공이다. 트럼프는 인종·여성차별적 발언을 비롯한 각종 막말로 주류 정치권과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는 그러나 주류의 지지 대신 ‘앵그리 화이트’라는 강력한 팬덤을 얻었다. 정치권 전체에 불신을 가진 대중은 그의 ‘속 시원한’ 막말에 열광했다. 사실을 왜곡한 가짜 뉴스는 그의 팬덤을 한층 강화했다. 적에게도 ‘페어 플레이’한 4년 전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과는 달랐다. 매케인은 대선 기간 자신의 지지자가 오바마를 무슬림이라고 주장하자 이를 바로잡았다. 트럼프는 그러나 매케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짜 뉴스를 부추겼다. 이번 미 대선에서 트럼프의 맞수는 오히려 민주당 의원 버니 샌더스였다. 그 역시 비주류 정치인으로서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바람몰이에 나섰다. 그러나 경선에서 클린턴에 패배하며 트럼프와의 진검승부엔 나서지 못했다. ‘팬덤의 경제학’의 저자 제레미 D 홀든은 “팬덤은 시장을 지배하는 거대한 유령”이라며 “앞으로는 대중의 가슴을 두드리는 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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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기간 지지자들 앞에서 유세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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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해 11월9일(현지시간) 그의 당선 확정 후 기뻐하고 있다. /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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