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안타깝다. 한국 과학계에 분명 타격이 있을 것이다.”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참석차 한국을 찾은 노벨물리학·화학상 수상자들은 기자간담회에서 과학꿈나무 등 한국 국민과의 소통을 기대하면서도 최근 한국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정부는 내년도 정부연구개발(R&D) 예산(25조9000억원)을 올해 대비 16.6%(5조2000억원) 삭감하고, 이 중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6.2%(1537억원) 줄이기로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한국 정부가 그동안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2위 수준의 투자를 해오면서 단기간에 기초과학과 산업을 아우르는 성장을 이뤄낸 부분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내년도 예산 삭감을 우려하면서 한국 과학, 산업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2023’ 참석차 한국을 찾은 노벨상 수상자, 노벨재단 관계자.(왼쪽부터)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조지 스무트, 마이클 레빗, 요아킴 프랑크, 하르트무트 미헬.(사진=한국과학기술한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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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들에 따르면 연구개발 예산 투자에 대한 고민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인 문제다. 기초과학 예산에 대한 투자가 당장 성과가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핀을 발견한 공로로 지난 2010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연구개발 예산에 대한 고민은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적 문제”라며 “과학 분야 투자에 대한 결과가 선거주기(4~5년) 안에 즉각적으로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리는 경향이 있고, 최근 한국 동료과학자들에게 예산이 부족하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예산 삭감이 이뤄지면서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비롯해 기초과학연합 등 과학기술계 유관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10여년전 과학예산 삭감에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서 예산을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 있었다. 조지 스무트 홍콩과기대 교수는 지난 2008년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회계연도 옴니버스 예산 법안으로 기초과학연구에 차질이 발생하자 미국국립과학재단 등에 긴급 추가 자금 지원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데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은 천연자원이 없는 빈곤 국가에서 인재의 능력과 과학기술 투자를 더해 성장했다”며 “TV기술이 기초과학 투자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처럼 과학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뿐만 아니라 산업적 효과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과학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호소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세수 부족, 과학계 비효율성 타파를 이유로 예산을 삭감했다. 하지만 수상자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기초과학 투자는 계속해야 한다고도 설명했다.
‘컴퓨터 생물학’을 창시해 지난 2013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이클 레빗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번 예산 삭감이 타당성이 있는지 여부는 잘 모르지만 삭감을 결정한 부분은 좋지 않은 결과”라며 “정치인들은 다양한 분야를 고려해 예산을 균형 있게 편성해야 하나, 미래에 중요한 교육과 과학기술 투자를 놓쳐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과학기술 예산 투자로 과학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면 안된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생화학 관찰의 새길을 개척한 공로로 지난 2017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요아킴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부의 과학기술 투자가 과학자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해선 안된다”며 “모든 과학자는 가설을 세운뒤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결과를 내놓아야 하며, 연구개발 예산도 이러한 과정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노벨상 수상자들은 이날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스웨덴 노벨재단 산하기관인 노벨프라이즈아웃리치가 노벨상의 지식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공동개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에서 과학꿈나무 등 대중 1000여명과 소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