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한국 힙합의 역설..상생으로 도약하라

  • 등록 2013-11-26 오전 10:20:09

    수정 2013-11-26 오전 10:20:09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천천히 시동을 거는가 싶더니 시속 100km 스피드를 5초 만에 돌파하는 스포츠카처럼 돌변했다. 손을 머리 위에서 ‘핸즈업’, 발을 의자 위에서 ‘푸시업’, 빙의라도 한 것처럼 가수라도 된 것처럼 랩을 쏟아낸다. ‘약이라도 먹었나?’ 요즘 은어를 저절로 읊조리게 됐다.

24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다이나믹 듀오의 콘서트 현장. 무대 위가 아닌 객석의 풍경이다. 옆 좌석의 관객들이 의자 위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바람에 팔꿈치에라도 맞을까 봐 멀리 뒷좌석으로 피해야 했다. 공연 중간 “자리에서 안 보이는 데 어디 갔느냐”는 주최 측의 문자 메시지에 “옆자리 관객들이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 피했다”고 답장을 보내야 했다.

한국 힙합은 다이나믹 듀오의 무대에서 볼 수 있듯 괄목할만하게 성장했다. 다이나믹 듀오가 신곡 ‘BAAAM(뱀)’으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휩쓴 여세를 몰아 2회에 9000여 관객을 콘서트 장으로 불러들였다. 가수의 열정은 뜨거웠고, 관객의 열기도 후끈했다. 아이돌그룹으로 대표되는 K팝의 또 다른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무대였다.

한국 힙합은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나 비주류가 아니다. K팝의 한 축으로 급부상했다. 빅뱅의 멤버 지드래곤이 MAMA 시상식에서 올해의 가수왕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여성 래퍼 t윤미래가 미국 음악채널 MTV가 선정한 ‘세계 최고 신예 여성 래퍼 12인’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멜론 등 음원 차트 톱 100에는 힙합이 적어도 20여 곡이 포함돼 있다. 요즘에는 다이나믹 듀오와 프라이머리를 시작으로 산이, 범키 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힙합이 전성기를 맞게 된 건 국내에서 소개된 지 20여 년만이다. 1970년대 디제잉, 랩, 브레이킹댄스 등으로 대표되던 랩이 1990년 즈음 홍서범의 ‘김삿갓’으로 소개됐고 1990년대 중반 서태지와 아이들의 부상으로 보편화됐다. 이후 한국 힙합은 듀스, 지누션 등을 거치며 한 단계 도약했고, 2000년대부터 가리온 데프콘 드렁큰타이거 에픽하이 등 수많은 스타들을 낳았다. 2000년 후반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양현석이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가 ‘힙합 아이돌’ 빅뱅을 내놓게 됐다.

힙합은 반항으로 대표되는 정서를 갖고 있다. 하지만 국내 힙합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생’을 통해 성장했다. 199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 힙합 가수들과 오버그라운드 힙합 가수들의 컴필레이션으로 대중의 눈에 들기 시작했다. 주석과 가리온 등 힙합 가수의 노래가 당시 YG패밀리의 음반에 실리는 등 컴필레이션 앨범이 속속 등장했다. ‘힙합 분야’ ‘힙합 세계’로 해석되는 이른바 ‘힙합 신’의 협력은 요즘에도 이어지고 있다. 프라이머리의 노래에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가 피처링을 맡고, 다이나믹 듀오의 노래에 신예 자이언티가 참가하는 식이다.

올해 우리 음악계의 화제 중 하나는 힙합 가수들의 ‘디스 전(戰)’이었다. ‘디스’는 ‘disrespect’의 줄임말로 폄훼 혹은 경멸을 의미한다. 내로라하는 래퍼들이 실시간으로 다른 힙합 뮤지션을 공격하면서 힙합 가수들 간의 세력 다툼으로 비화됐다. 스윙스 등 신예 힙합 가수들이 다이나믹 듀오나 슈프림팀의 아성의 도전장을 던진 게 아니냐는 소문도 불거졌다.

최근 몇몇 힙합 가수는 자리를 잡자마자 소속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시도했다. 행사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는 힙합 가수도 적지 않다. 이제 막 꽃을 피운 한국 힙합의 미래를 위해서 적어도 힙합 신 안에서의 협력이 필요할 때다.

24일 다이나믹 듀오의 무대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웠던 순간은 크러쉬, 자이언티 등 신예 힙합 가수들과 함께한 노래였다. 관객들은 조만간 스타덤에 오를 예비 힙합 스타의 이색적인 음색과 독특한 라임에 환호했다. ‘가왕’ 조용필이 10년 만에 내놓은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뮤지션은 래퍼 버벌진트였다. 혹 나훈아가 복귀할 때 한 신예 힙합 가수의 피처링을 쓴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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