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글탱글한 ‘토종 굴’ 씹기도 전에 넘어가네

오태진 기자의 ''이 맛''
  • 등록 2007-10-18 오후 12:50:00

    수정 2007-10-18 오후 12:50:00

[조선일보 제공]
 
▲ 토종 굴 화채

 
>> 인천 구월동 ‘산호’

인천 남동구 구월동 ‘산호’에 가면 놀랄 일이 몇 있다. 우선 주방 앞 진열 냉장고에 절로 탄복한다. 위에 미닫이 유리문을 달아 훤히 들여다 보이는 냉장고에 갖은 해물이 그득하다. 생선이며 조개, 새우, 문어까지 여남은 제철 해산물들을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고 얌전하게 다듬어 쟁반마다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장사를 준비하는 자세와 여주인의 정성이 한눈에 전해 온다. 매일 아침 장 봐온 것들을 오전 내내 다듬는다고 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맛이 당긴다.

다음으로 이 집만의 독특한 ‘한정식’이다. 정해진 상차림이 따로 없이 일년 열두 달 다르다. 연안부두와 인근 섬, 멀리는 목포에서 그날그날 들여오는 물 좋은 해산물을 되는 대로 차린다. 요즘엔 생선회에 먹갈치구이, 서대조림, 우럭구이, 말린 대구찜 같은 것을 올린다. 홍어는 백령도나 대청도산을 삭혀 낸다. 대구나 우럭, 놀래미들은 며칠 꾸덕꾸덕 말려 쓴다. 돼지 등갈비찜과 김치찌개를 빼곤 주요 요리 예닐곱 접시가 간장게장까지 포함해 해산물 일색이다.

백미는 ‘토종 굴 화채’〈사진〉다. 추석 지나 10월 초부터 덕적도에서 캐는 자잘한 토종 굴을 직접 사들여 묵은 김치와 배, 오이, 파, 김가루, 깨소금을 넣어 말아내는 일종의 물회다. 엄지손톱만큼 작지만 탱글탱글하고 고소하고 향긋한 굴들이 매콤 새콤 시원한 국물과 함께 그냥 목을 타고 넘어간다. 그 맛과 향기와 감촉은 굵은 양식 굴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답답한 속이 절로 뚫린다. 처음엔 후식으로 내던 것을 너도나도 반겨 이젠 맨처음 밥상에 올라 입맛 돋우는 간판 음식이 됐다. 굴철이 지나면 멍게화채로 대신한다.

연중 음식은 간장게장과 병어조림, 황석어 뚝배기조림, 황석어구이쯤이다. 선주(船主)와 계약해 병어는 제철인 4월에, 황석어는 6월에 1년치를 사서 수협 창고에 급랭해 두고 쓴다. 작아서 초라해 보이는 황석어여도 무를 넣어 빨갛게 조린 것과 구이가 고소하고 깊은 맛 나는 별미다. 이렇게 다양한 해산물 요리들을 밑반찬과 엮은 한정식이 2만원. 낮엔 1만5000원짜리도 있다. 구이·찜·탕 일품요리들에 중점을 두는 술상은 1인당 3만원이다. 한정식과 술상 손님이 반반쯤 된다지만 술꾼들이 더 좋아할 집이다.

마지막으로 보기 드문 일은 주인이 손님 신분이나 처지를 보아가며 술상 값을 2만원도 받고 2만5000원도 받는다는 것이다. 상도 알아서 차리고 돈도 알아서 받는 장사 방식은 손맛과 식재료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 없이는 안 되는 일이다. 운이 좋으면 산을 좋아하는 여주인이 소백산, 월악산에서 캐온 야생 더덕을 보는 앞에서 으깨 타 주는 더덕 소주를 얻어 마실 수 있다. 그날 물 좋은 해물이 뭔지 물어 좋아하는 음식을 미리 주문할 수도 있다.

1993년 구월동 반지하 집에 동그란 의자 몇 놓고 시작한 이래 잠깐 연수구로 옮긴 것 말고는 내내 구월동을 지킨 토박이 음식점이다. 경인지방노동청 뒷골목. 방 8개. 안마당에 10여 대 주차할 수 있다. 일요일엔 쉰다. (032)441-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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