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HBM3E, 엔비디아行 임박…차세대 HBM4 전쟁 온다

젠슨 황 "삼성 HBM3E 납품 검토"
HBM 경쟁력 올리기 나서는 삼성
엔비디아도 수급 측면서 삼성 필요
6세대 HBM4는 '2강 구도' 가능성
  • 등록 2024-11-24 오후 5:51:02

    수정 2024-11-24 오후 6:56:34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삼성전자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납품 승인을 두고 “최대한 빨리 작업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SK하이닉스 외에 삼성전자 제품까지 조만간 공급받겠다는 의미다. 삼성 HBM3E가 ‘큰 손’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가속기에 탑재된다는 뜻이다.

초기 공급 물량은 경쟁사 대비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회사의 본격 협업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AI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HBM 시장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어서다. HBM 시장을 장악한 SK하이닉스와 함께 삼성전자(005930)가 6세대 HBM4부터는 ‘2강’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젠슨 황 “삼성 HBM3E 납품 검토”

황 CEO는 23일(현지시간) 홍콩 과학기술대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블룸버그TV와 만난 자리에서 “삼성전자로부터 HBM3E 8단과 12단 모두 납품받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 등을 대폭 끌어올린 고부가·고성능 제품이다. 황 CEO의 언급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의 ‘AI 동맹’을 뚫고 조만간 삼성전자 HBM3E 납품이 이뤄질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래픽=김일환 기자)


HBM 시장은 AI 가속기를 장악한 엔비디아에 의해 사실상 좌우됐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 3월 HBM3E 8단을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납품했고 지난달 12단 생산 역시 본격화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최근 “내년 초 고객사에 HBM3E 16단 제품 샘플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고객사는 엔비디아가 유력하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올라온 것은 엔비디아에 대한 독점 공급과 직결돼 있다. 최근 삼성전자 실적과 주가가 부진을 거듭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황 CEO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공급업체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을 언급했을 뿐 삼성전자는 거론하지 않았다.

HBM 경쟁력 올리기 나서는 삼성

다만 이날 황 CEO의 언급으로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삼성 반도체는 실적 반등 가시화를 위한 방도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중국 창신메모리를 필두로 범용 D램 치킨게임 가능성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DDR4, LPDDR4X와 같은 범용 D램 가격은 충분한 공급량 등으로 이미 하락 추세”라며 “중국이 급속도로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당장 내년부터 범용 메모리의 수익성이 급격하게 낮아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는 고부가 HBM 경쟁력부터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가 아닌 AMD 등에 HBM3E를 납품하면서 점유율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엔비디아를 잡지 못하면 ‘HBM 2인자’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이 근래 들어 ‘메모리 집중’ 전략을 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주요 고객사들의 차세대 그래픽저장장치(GPU)에 맞춰 최적화한 HBM3E 개선품을 추가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산 목표 시점은 내년 상반기다.

삼성전자는 HBM3E 제조에 14나노급 1a D램을 사용하고 있다. 10나노급 1b D램을 쓰는 SK하이닉스보다 D램 성능 자체에서 밀린다는 평가가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1a D램의 일부 회로를 재설계해 성능을 높이는 식으로 주요 고객사 맞춤형 HBM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은 “HBM을 살리려면 D램 자체를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가격 협상력과 제품 수급 등을 감안할 때 삼성 HBM3E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고부가 HBM 시장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웃돌고 있다.

6세대 HBM4는 ‘2강 구도’ 가능성

삼성전자의 HBM3E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초기 물량은 미미할 전망이다. 그동안 시장을 장악했던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6세대 HBM4 시장은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HBM4부터는 기존 HBM3E 대비 바뀌는 점이 많다. GPU와 연결돼 HBM을 컨트롤하는 ‘베이스다이’가 일부 연산까지 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는 베이스다이와 관련해 HBM4부터는 대만 TSMC와 협력 가능성을 열어놨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메모리, 시스템LSI, 파운드리 모두 가능한 ‘턴키’ 솔루션을 경쟁력으로 강조해 왔는데, 고객 맞춤형 HBM4의 경우 베이스다이는 TSMC에 위탁하는 식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HBM4에서 ‘뒤집기’에 나서겠다는 삼성전자의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또 다른 반도체업계 인사는 “삼성전자가 TSMC에 손을 내미는 것은 유연한 대응”이라며 “HBM4가 시장 주류로 떠오를 오는 2026년부터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격화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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