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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훈 김호준 김보겸 기자] “원산지 검사하려고 나온 건가요? 그렇지 않다면 확인해주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가뜩이나 바쁜 시간이니 그럴려면 고기는 다른 가게에 가서 알아보세요.”
3월3일, 축산업협동조합이 양돈 농가 소득을 늘리기 위해 삼겹살 먹는 날로 지정한 이른바 `삼겹살데이` 오전. 돼지고기를 구매하기 전 생산·유통이력을 확인하기 하기 위해 축산물 이력서를 보여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한 정육점 직원은 인상부터 찌푸리며 이렇게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최근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면서 식품을 구입할 때 생산·유통 이력 등 구체적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일명 `퍼슈머(Pursumer)`가 늘고 있다. 특히 한국 식문화의 최고 인기 메뉴인 돼지고기는 매년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속여 파는 업체들이 적발되는 만큼 이력을 확인하려는 소비자 권리가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삼겹살데이를 맞아 찾아간 일부 정육점들은 여전히 축산물 이력서를 보여달라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
원산지 위반건수 중 돼지고기 1위…돼지고기 안전 찾는 퍼슈머 늘어
퍼슈머들은 특히 돼지고기의 안전성 확인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최근까지도 수입산 돼지고기를 국내산으로 둔갑하는 등 원산지를 속이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주부 이경미(44·여)씨는 “독일이나 네덜런드산 돼지고기를 국산이라고 팔았다는 소식이 명절 때마다 들리곤 한다”며 “국산이라고 웃돈을 주고 샀는데 사실 수입산이었다면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영화(50·여)씨도 “사실 예전에는 마트나 정육점에 국산이라고 붙어 있으면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의심부터 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한 원산지 위반건수 4514건 중 배추김치(1101건)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1069건(26.2%)이 돼지고기였다.
“이력서 확인하려면 다른 데 가”…“정보 확인 거절하면 패널티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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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돼지고기 원산지에 대한 소비자 불안은 커지고 있지만 일부 정육업자들은 축산물 이력서를 확인하는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정육점 직원도 축산물 이력서를 보여줄 수 있냐고 하자 “회사 서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서류를 확인할 수 없도록 먼발치에서 서류철을 잠깐 보여주기도 하고 생산지와 생산자를 확인할 수 없는 증명서를 들이 밀기도 했다.
축산물 이력서를 보여주는 업자들은 서류가 없으면 단속에 걸려 범칙금에 영업정지까지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정육업자는 단속이 허술한 점도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정육점 사장 황모씨는 “구청에서 단속한 날짜를 미리 알려주기도 한다”며 “구청에서 명절 연휴 전에 연례 행사처럼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단속 나오기 전에 구청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엄마들이 미리 와서 준비하라고 알려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축산물 이력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벌칙조항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돼지고기 생산지부터 유통까지 파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그 제도를 소비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며 “소비자들이 판매업자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했을 때 거절하면 신고를 당할 수 있는 등 패널티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도 축산물의 이력을 확인해주지 않는 업체들에는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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