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오류’는 처음…비슷한 사례 없어
수능문제에서 실수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언어영역), 2008년(물리2), 2010년(지구과학1) 등 3차례나 ‘복수응답’을 인정한 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3차례 모두 논란은 크지 않았다. 복수응답만 정답으로 처리해 상대적으로 수험생들의 혼란이 적었기 때문이다. 2004년과 2010년에는 채점 전 복수응답이 인정됐고, 2008년에는 대입결과가 나오기 전 수정된 성적표가 발송됐다.
반면 이번 출제 오류는 성격이 다르다. 서울고법은 16일 2014년 수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에 대해 “정답이 없다”며 해당 시험 응시생 3만7684명 전원을 정답처리하도록 판결했다. 해당 문항의 정답률이 49.89%였으니 약 1만9000명의 점수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2014학년도 대학입시가 10개월 전에 모두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피해 학생들은 ‘억울한 성적표’를 들고 대학의 문을 두드려 이미 결과를 받은 상태다.
교육부·평가원 “대법원 상고 여부 결정 못해”
하지만 교육부와 평가원은 2심 판결 뒤에도 “판결문을 받아본 뒤 내부 논의를 거쳐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3심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에 피해학생 구제에 대해서는 지금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며 “내부 의견이 조율되면 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17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피해학생 구제에 힘써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전교조는 이 문제로 대학에 탈락한 학생을 정원 외로 추가 합격시키고 정신적 피해를 금전 보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제는 어려울 듯…대규모 손해배상 소송 예상
피해는 입었지만, 구제는 쉽지 않다. 먼저 세계지리 등급 취소소송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22명을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행정처분 취소소송의 제소시효는 처분 일로부터 90일 이내다. 하지만, 행정처분에 해당하는 수능성적표는 지난해 11월 통보돼 이미 시효가 끝났다.
피해 수험생들이 교육부와 평가원을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법원 판결까지 간다면 워낙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가장 실효성 있는 구제책으로 꼽힌다. 이성희 변호사는 “민사소송은 3년 안에만 하면 되기 때문에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소송을 걸 가능성도 있다”며 “하지만 워낙 대상이 많아 수험생 1인당 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 금액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평가원이 자문을 요청했던 외부학회 역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한국경제지리학회와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는 평가원의 세계지리 8번 문항 자문요청에 “문제없다”는 의견서를 제출했고 평가원은 이를 토대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교육계 관계자는 “현장에서도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며 “외부학회까지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고 사태가 이 지경까지 왔다. 외부학회 역시 이번 사태에 책임이 크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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