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정상가족의 범주 밖에 있는 아이들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속한 가정의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특히 비혼 출산의 경우 친부가 양육 책임을 거부하면 경제적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아이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양육비를 보장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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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출산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주로 법적 결혼(혼인신고)은 하지 않으면서 이성 커플간 혹은 여성 혼자 출산·양육을 하는 것을 일컫는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정자 은행을 통해 출산한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를 통해 담론의 물꼬가 트였고 최근 배우 정우성이 모델 문가비의 아이의 친부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밝혀 다시 화두가 됐다. 통계청의 ‘2024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혼 출산에 찬성하는 비중은 27.2%까지 늘어 2012년(22.4%)부터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현재 복지 측면에서 비혼 출산에 대한 지원 차별도 거의 없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부모가 아닌 영유아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적인 사회 문화는 비혼 출산을 어렵게 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여성가족부가 2021년 발간한 ‘비혼동거 실태 분석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시선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한 비혼동거 가족 응답자는 전체의 절반을 차지했다. 자녀가 성장 과정에서 받게 될 이같은 부정적 시선은 이들이 비혼 출산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로 꼽혔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법망 안으로 넣는 방안은 앞서 지난 21대 국회에서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를 통해 시도된 바 있다. 이는 동성 부부의 혼인 성립과 비혼 출산 보장, 동거가족 신고 등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가 진전되지 않으면서 입법화 작업은 무위에 그쳤다. 당시 종교계의 반발은 거셌다. 특히 기독시민단체들은 가족구성권 3법이 위헌적이고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맞불 집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미 서구권은 유럽을 중심으로 비혼 동거를 제도화한 국가들이 많다. 특히 프랑스의 연대의무협약(PACS·팍스)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팍스는 법적 혼인을 하지 않은 동거 관계를 보호하는 제도로 출산·양육에 대한 지원 차별이 없는 것은 물론 세금 등의 혜택도 동등하게 지원받는다.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에 따르면 2022년 전통적 방식의 결혼은 20만 6546건, 팍스는 20만 9461건으로 거의 같은 비율이다.
출산 후 남편이 양육 책임을 거부할 경우에 대비해 정부가 이를 보완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미혼모에게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현행법이나 행정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2022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양육비이행법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모들이 자녀의 친부로부터 양육비를 청구해 실제로 돈을 받은 비율은 2021년 기준 38.3%에 그쳤다.
최영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아빠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니 특히 여성 한부모가 빈곤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영미 한국여성변호사회 사무총장도 “혼외자라도 출생신고가 되고 양육비를 받으면서 정상적으로 자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다른 한쪽 부모가 양육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문제가 된다”며 보완이 필요하고 짚었다.
국가가 한부모가족에게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비양육자로부터 나중에 받아내는 ‘양육비 선지급제’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정부는 이를 보완해 비혼 출산과 관련해 추가 지원책을 모색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태어난 아이는 잘 양육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 등 지원을 정책적으로 확대해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법 개정의 경우 검토 과제로는 포함돼 있으나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하는 부분이기에 소관부처인 법무부와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