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⑬박광철 금융감독원 팀장(중)

  • 등록 2001-06-01 오후 3:14:05

    수정 2001-06-01 오후 3:14:05

[edaily] 이번주 “300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국의 박광철 팀장입니다.
(인터뷰 상편에서 이어짐)
-자산운용감독국이 생기고나서 여러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하셨죠? 투신 구조조정, 뮤추얼펀드 설립, 시가평가제 도입, 하이일드 펀드 설립, 최근의 MMF 사태까지... 우선 신세기투신과 한남투신 정리작업부터 얘기해 주시죠. ▲97년 12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세기투신이 법인 환매요구를 감당하다가 안되니까 증권금융에 100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어요. 훗날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미 역외펀드인 JP모건의 파생금융상품과 관련해서 엄청난 손실을 입고 있었던 상태였지만요. 신세기는 이미 한남보다 더 큰 부실을 안고 있었습니다. 신세기투신은 97년 10월부터 아는 사람은 이미 눈치를 챈 지경이었다고 하더군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현장으로 가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일을 처리해야했고 투자자들은 아우성이고...제가 사태수습을 잘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솔직히 처음 당한 일을 그 정도로 마무리짓기도 어려웠다고 생각합니다. 고려증권 실사작업이 진행중인 과정에서 신세기투신이 터졌습니다. 당시에는 재정경제원이 감독권한을 가지고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입장을 정리할 수 없었어요. 자산실사 쪽에서만 위촉을 받아 투입됐죠. <“왜 이자 안주냐고 대드는 상황에서 원금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맞아죽을 분위기였어요”>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증권과 투신업무가 가장 달랐던 점은 투자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투자자들은 투신에서 원금을 잃는다는 생각자체를 가지지 않았어요. 한꺼번에 몰려와 "내 이자 내놔라. 왜 이자 안주냐"고 대드는 상황에서 원금이 줄어들었다는 말을 하면 맞아죽을 분위기였으니까요. 6개월이든 한달이든 내가 돈을 넣어놨으니까 그 기간만큼 이자를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원금보장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네요. ▲그렇죠. 원금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이고 이자를 내놓으라는 것이죠. 정말 황당한 일은 일반 기업들마저 매일매일 입출금이 이뤄지는 운용자금을 투신에 넣어놓고 이자를 달라고 요구했던 점입니다. 법인들이 "투신이 당좌예금보다 이자를 더 준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자를 달라"고 생떼를 쓰는데 정말 아연실색했습니다. IMF 터지면서 우리나라가 굉장히 많은 학습비용을 냈고 그 비용이 국민들의 혈세로 충당됐습니다. 그 많은 비용이 소모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투신상품에 대한) 인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이런 면에 있어서 좀 더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증권거래위원회)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기구가 필요합니다. 금융상품의 약관 자체가 잘못됐을 경우 파괴력은 엄청나고 그 손실은 모두 투자자가 감당해야 되잖습니까. 또 기본적으로 투자자도 무식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는 정부가 금융환경 규제를 전적으로 맡아왔고 투자자들은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었어요. 보험이든 투신상품이든 금융기관이 투자자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면 투자자는 "yes/no"만 결정하면 됐으니까요. 정보의 비대칭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거죠.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 투자자들은 스스로가 다양한 상품을 알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하고 정부는 그러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홍보에 많은 노력을 할애해야 합니다. <투신권의 구조적인 문제들, 환매시스템과 시가평가> -한남투신 사태는 지금 현대투신 문제와도 관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진행중인 일과 연계된 것이라 당혹스럽군요.(웃음) 솔직히 지금 이 순간 그 당시에 일어났던 일을 숨김없이 얘기해도 될만한 것인지도 모르겠고... 아직 우리경제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98년 한남투신 사태는 거평그룹때문에 촉발됐습니다. 한남투신의 원래 대주주는 동화석유라는 회사였죠. 대주주 지분을 거평이 인수한 것이죠. 거평은 인수 후 한남투신의 신탁계정을 그룹의 자금조달 창구로 이용했습니다. 거평이 무너지자 한남투신의 신뢰도가 결정적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투자자들이 한남투신으로 몰려와서 환매를 요구했지만 호남지역의 정서는 어떻게든 한남투신을 살려야한다는 쪽으로 맞춰졌어요. 그러나 부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한남에서 스스로 영업정지 신청을 했습니다. -현대투신이 한남의 인수자로 결정된 사연은 무엇입니까. ▲그 얘기는 현단계에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현대가 지금 AIG와 협상 중이고… 또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남투신 사태를 무리없이 수습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외환위기를 넘기고 98년 이후 금리가 떨어지면서 투신권으로 돈이 왕창 몰리던 시기가 있었죠? ▲당시 투신권의 자금이 단기간에 105조에서 250조로 2배 이상 불어났습니다. 대우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초고속으로 늘어났으니까요. 98년 1월 투신감독권이 증감원으로 넘어왔고 실질적으로는 98년 4월1일 금감위가 발족되면서 투신감독을 하게됐죠. 그 전의 일은 뭐라고 이야기 할 입장이 아니구요. 저는 4월 이후 얘기만 하겠습니다. 98년 4월 이후 투신감독권한을 넘겨받기 이전부터 이미 분석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부실원인이 뭐냐는 것이 가장 큰 화두였죠. 가장 큰 문제는 환매 시스템이 망가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적상품은 유가증권에 투자하는 것인데 이것을 당일 환매하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당일환매를 무리하게 시행하다보니 부실로 자연스레 이어진 거죠. 두번째로는 투신이 수익증권을 팔 때 투신사 내부에서 차입을 해서 매출방식으로 펀드설정을 했거든요. 이 때문에 차입금에 대한 이자부담이 엄청났고 유가증권이 팔리지않으면서 미매각 수익증권의 평가손실로 이중부담을 안게됐죠. 세번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는데 펀드평가를 시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가평가제도는 재정경제원 시절부터 채권시장 인프라 구축이다해서 수없이 논의됐던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시가평가를 하기 위한 기본적인 토양이 안 됐으니까 번번히 무위로 돌아간거에요. 시가평가를 하려면 어떤 기업이 채권을 발행할 때 그 기업에 대한 평가가 올바르게 돼야하거든요. 신용평가회사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해도 문제점은 또 남습니다. 신용평가회사가 매긴 가격대로 채권이 거래될 수 있는 시장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거죠. 그런데 이 두 가지 토양이 조성되지 못하니까 투자자들은 채권투자시 어떤 가격이 정상적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장부가 제도는 만병의 근원이며 이를 고집할 경우 더 이상의 수습은 불가능하다" 는 판단 하에서 금감원은 98년 11월 채권시가평가제 도입을 선언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00년 7월1일 전면시행한다. 신규펀드는 막고 기존펀드는 자연소멸시키겠다"는 원칙을 수립하고 채권시가평가제도 시행이 이뤄졌습니다. <대우사태와 부분 환매 원칙> -시가평가를 기다리는 사이에 대우사태가 터져버렸단 말입니다. ▲시가평가제 도입에는 저희 나름의 상황 판단은 물론 제도준비 및 설립 등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둘러서 제도를 시행한 이유는 투신수탁고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가와 장부가의 괴리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에요. 투신사의 이면약정(제시수익률) 때문에 그나마 괜찮은 자산들도 부실화의 길을 걸을 것이란 우려감도 작용했죠. 그러나 업계는 시가평가제를 꺼려했죠. 제도도입이 지연되면서 속으로 상처는 점점 더 곪아가고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대우 CP(기업어음)를 25% 조건으로 3년 연장해서 사들인 곳까지 있었습니다. 25%에 CP를 발행하니 장부가 개념으로 신탁재산의 수익률은 올라갈 수 밖에 없었어요. 외관상으로는 수익률이 엄청났죠. -대우사태 당시 해법은 부분 환매에 응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환매를 해줄 때 가격 계산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상당히 복잡한 논의들이 오간 걸로 압니다만. ▲제일 문제가 됐던 건 역시 전산시스템이었습니다. 펀드내에서 대우와 비대우 부분을 분리하는 작업이 제일 어려웠어요. 저희는 처음에 전산작업이 보름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대우와 비대우를 분리해야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우부분에 대해서는 가격이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우채권은 장부가격만 나와있지 누구도 가격산정을 얼마로 해야할 지 몰랐어요. 또 부도가 났으니 잔존가치를 남겨두고 나머지는 상각해야 하는데 이 상각 부분도 평가할 수가 없었습니다. 잔존가치가 얼마인지를 모르니 판단이 불가능한 건 당연하죠.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작업을 시행했고 최종실사가 끝나는 시점에서 단계별로 환매를 시작하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냈습니다. 투자자들이 환매를 해달라고 한꺼번에 몰려올 것을 고려해서 90일 미만은 50%, 90~180일 사이는 80%, 180일 이상은 95% 환매해 준다는 원칙을 정한 것이었죠. 충격을 점진적으로 흡수하기 위해서요. <"시장전체를 패닉으로 몰아가 시장붕괴를 초래할 수는 없다"> -당시 기억나시는 에피소드는 없나요. ▲금융대란 수습대책반에서 근무할 때는 정말로 소파에 쭈그리고 자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새벽 4시쯤 눈을 붙여서 채 2시간도 못자고 6시쯤 다시 일어났으니까요. 당시 워낙 사안이 중요하다보니 임원들께서 6시 정도면 출근하셨고 대책반에도 자주 들리셨어요. 피곤함때문에 소파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집니다. 당연히 이불이고 뭐고 덮을 겨를도 없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뜨면 꼭 누군가는 옷을 벗어서 덮어주는 거에요. 직원들의 우애가 돈독했습니다. 그러니 "아 이 정도면 내가 몸바쳐 일할만한 직장이다"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 -투신상품에 대해 환매를 보장해준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투신상품은 실적상품인데 실적상품에 50, 80, 95%의 범위를 그어놓고 환매를 해준다는게 도대체 될 법이냐 하는 근거에서 말이죠. 저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탁재산 운용에 있어서 시장전체를 패닉으로 몰아가 결국 시장붕괴를 초래할 것이냐를 고려해야 한다는거죠. 투신들은 대우채권를 엄청나게 사들였습니다. 대마불사론을 신봉하던 투자자들도 투신권 펀드에 있는 대우채가 휴지조각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구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이 붕괴되면 어떻게 됩니까. 시장 실패으로 일어나는 손실은 크레딧을 잘못 판단해서 생기는 손실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대우사태는 시장존립과 관계되는 문제였지 특정종목의 부실채권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었어요.
(인터뷰 하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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