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산실 된 상아탑…'인재 넘어 벤처 육성'

도쿄대, 실리콘 밸리 창업 분위기 옮겨와
미국은 이미 '기업가적 대학' 변화
중국 중관춘도 탄탄한 대학 기반으로 성장
  • 등록 2015-08-30 오후 4:03:03

    수정 2015-08-30 오후 9:09:00

[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상아탑이었던 대학이 점차 스타트업 육성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와 경제를 이끌어갈 인재를 육성하는 차원을 넘어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벤처를 키우는 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본 내 최고 대학으로 여러 명의 총리와 각료를 배출해낸 도쿄대는 최근 기업가 양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총리가 교육기관을 혁신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밝히면서 138년 전통의 도쿄대 역시 기존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벗고 캠퍼스에 실리콘 밸리의 창업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도쿄대 교수나 학생들이 창업했거나 대학 내에서 출범한 스타트업은 올해 8월 현재 240여 개를 넘어섰다. 이는 5년 전인 2010년보다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16개 기업이 기업공개에 나섰고 이들의 시가총액은 총 80억달러(약 9조4160억원)에 달한다.

도쿄대 에지캐피털(UTEC)은 대략 2억5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면서 각종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이 늘수록 특허 수입도 증가해 지난해 4억8800만엔(약 47억5673만원)으로 2010년에 비해 세 배 늘었다.

2008년 도쿄대 석사과정으로 유학 온 중국인 타오 쳉은 에지캐피털로부터 4000만엔을 유치해 팝인(popIn)이라는 온라인 광고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중국 2위 검색포털 업체 바이두(百度)에 10억~20억위안(약 1822억~3645억원)에 팔렸다.

미국은 이미 벤처 생태계 조성에서 대학이 큰 역할을 해왔다. 특히 스탠퍼드대가 없었다면 실리콘밸리도 없었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탠퍼드는 수많은 기업가를 배출한 곳이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을 밟을 때 구글을 공동 설립해 현재 4400억달러 규모의 기업으로 키웠고 야후를 창업한 제리 양, 테슬라 설립자 앨런 머스크 등도 스탠퍼드 동문이다.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설립한 기업은 4만여 개로 이들 기업이 창출한 일자리는 연간 540만개, 매출액은 2조7000억달러에 달한다. 스탠퍼드대 기술벤처 지원 프로그램 ‘STVP’는 다른 대학의 모델이 되고 있다. 실리콘 밸리 근처에 있는 UC 버클리 역시 스타트업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한 각종 프로그램과 연구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이밖에 MIT, 하버드, 시카고대, 뱁슨대 등 200여개 미국 대학이 기업가센터를 운영하면서 대학 내 창업붐을 조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학 운영 패러다임이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으로 바뀌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일본인과 실리콘밸리를 연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구시다 겐지 스탠퍼드대 연구원은 “많은 학생들이 스탠퍼드에 입학할 때 기업가가 되겠다고 계획을 세우지 않지만 창업을 추진하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창업 열기가 여느 나라보다도 뜨거운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 스타트업의 중심인 중관춘(中關村)이 중국판 실리콘 밸리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근처 유명대학을 졸업한 우수 인력들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창업지원 정책을 등에 업고 중관춘 주변 명문대는 각종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칭화대는 치디창투를 설립해 스타트업 육성에 나섰고 베이징대 출신들은 베이징대교우창업연합회를 만들어 동문의 창업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베이징대 출신인 리옌홍(李彦宏) 바이두 회장과 위민홍(兪敏洪) 둥팡 교육과기그룹 회장, 칭화대 출신인 저우야후이(周亞煇) 쿤룬 회장 등을 배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창조경제에서 한발 앞서 간 핀란드의 경우 알토(Aalto) 대학이 창업의 산실로 유명하다. 헬싱키공과대, 헬싱키경제대, 헬싱키예술디자인대 3곳을 통합한 알토대는 학교내 연구실 ‘알토팩토리’, 창업지원 전문 서비스 기관 ‘알토 중소기업센터’, 창업 동아리 ‘알토스’(Aaltoes) 등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스타트업을 설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알토대가 개최하는 창업 컨퍼런스 ‘슬러쉬’(SLUSH)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투자유치를 할 수 있는 유럽의 대표 행사로 부상했다.

카가미 시게오 도쿄대 교수는 “대학에 다닌다고 모두 창업가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귀감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10명의 눈에 띄는 기업가만 있어도 차이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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