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컸던 R&D예산·보조금 줄이고…취약층 복지·안전망 지원 늘렸다

[2024예산안]
올해 본예산 대비 2.8%↑…증가율 20년 만 최저
세입 결손에 2년 연속 20조원 지출 구조조정 단행
취약층 민생지원 집중…정신건강·마약 등 대응도
  • 등록 2023-08-29 오전 11:04:01

    수정 2023-08-29 오후 7:57:00

[세종=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건전재정’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가 재정 허리띠를 더 바짝 졸라 맸다. 총지출 증가율(2.8%)은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고,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고강도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23조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이권 카르텔 지적을 받았던 연구개발(R&D) 예산은 8년 만에 삭감 칼바람을 맞았고, 부정수급 논란이 일었던 보조금도 싹둑 잘려나갔다.

정부는 재정 정상화로 확보한 재원을 △약자복지 △미래준비 △일자리 △국가 본질기능 등 4대 중점분야에 재투자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 보호, 청년들의 자립 기반 지원 예산을 크게 늘렸다.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된 이상동기 범죄(묻지마 범죄)와 기후위기로 인한 수해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도 확대 편성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올해 본예산 대비 2.8% 증가…2년 연속 20조원 구조조정

정부가 29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내년도 총지출 예산안은 656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2.8% 증가했다. 총지출 증가율 2.8%는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 동안 확대된 재정수지 적자 폭과 1000조원 이상 누적된 국가채무로 인해 재정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올해와 내년의 세수 상황도 녹록지 않다”며 “2.8%의 지출증가율은 건전재정을 지켜내기 위한 정부의 고심 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정부가 첫 예산에서 건전재정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올해는 이를 더 공고히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40조원 안팎의 세수 결손에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을 대응하는 대신, 평년 대비 두 배 수준인 20조원 이상의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2년 연속 단행하는 등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쪽을 택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 7월 전 부처를 대상으로 취합이 끝난 예산 요구서를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며 대규모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한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눠먹기식’이라고 비판했던 R&D와 관행적 지원이 확대돼온 보조금은 중점 정비 분야로 선정됐다. 내년도 R&D 예산은 25조9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올해(31조1000억원) 대비 16.6% 줄어 정부 예산 12개 분야 중 감소폭이 가장 컸다. 재정비한 7조원 가량의 R&D 예산 가운데 2조~3조원은 다른 사업으로 이관됐고, 4조~5조원 가량은 삭감됐다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다만 구체적인 구조조정 사업 목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가 지자체와 민간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예산 규모는 2018년 66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102조3000억원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감사원, 국무조정실, 기재부 보조금부정수급관리단은 재정누수 요인으로 지적된 보조금 사업들을 점검해 정비 대상을 솎아냈다. 그 결과 비영리민간단체의 경우 부정수급, 부적정 집행된 부분을 반영한 내년도 예산 편성 규모는 약 33억원으로 올해(65억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보조금 예산 감액 규모는 총 3조8000억원에 달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2.8% 늘어난 656.9조원으로 편성됐다. (사진=뉴시스)


취약층 민생지원 집중…정신건강·마약 등 사회문제 대응도

이렇게 절감한 재원은 사회적 약자 복지, 안전망 확충 등에 집중 투입한다. 주요분야별 재원 배분 계획을 보면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242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7.5% 늘었다. 공공질서·안전 분야(24조3000억원)도 6.1% 증가했다. 반면 교육 분야와 일반·지방행정분야는 교육교부금과 지방교부세가 총 15조원가량 줄어든 영향으로 각각 6.9%, 0.8% 축소됐다.

생계급여 최대지급액을 올해 대비 최대 13.2%(21만3000원·4인가구 기준) 인상하는 등 저소득층 지원에는 19조4000억원이 투입된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의 주간 1대1 돌봄체계 신규 도입 등 장애인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은 6조3000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저소득 다문화 가족 자녀 6만명에 168억원을 들여 교육활동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내년 처음 실시된다.

청년들이 연 최대 32만4000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는 대중교통 통합정기권 ‘K-패스’ 도입에는 516억원이 편성됐다. 대학생들이 경제적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저리 생활비 대출 한도는 35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늘리고, 국가기술자격시험 응시료는 50% 감면한다. 노후 산업단지를 청년친화형 환경으로 바꾸는 산리단길 프로젝트에는 1152억원, 청년농 육성 패키지 지원에는 4582억원이 각각 투입된다.

군 초급간부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은 1조1000억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녹물관사 등 문제가 됐던 노후 시설을 개선하고 3년 미만 초급 간부에 대해서도 주택수당을 신규 지원한다. 단기복무장려금을 장교는 9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부사관은 75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300만원과 250만원 인상한다.

최근 이상동기 범죄를 계기로 국민 정신건강 관리 관련 예산은 550억에서 1282억으로 확대했다. 이를 통해 고·중위험군 8만명 대상 상담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정신응급의료센터는 2개소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경찰관 3명당 1정씩 지급됐던 저위험 권총을 한명에 1정씩 지급하기로 하는 데 86억원을 쓴다. 마약류 오남용 예방 지원 예산은 238억원에서 602억원으로 늘리고, 수해 피해가 빈번해지면서 국가 물 안전관리체계 구축에도 6조3000억원을 투입한다.

추 부총리는 “국가 재정건전성에 관한 가치는 한시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며 “기본은 바른 건전 재정 기조에 확고히 두되, 민생 지원, 경제 활력, 미래 대비, 국민 안전, 국방 등 돈을 써야 할 곳에서는 제대로 쓰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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