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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시장에 퍼지는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전세가뭄 속 역대 최고가 거래가 속출하는 것은 예사다. 전세 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에 10여명이 달라붙어 제비뽑기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되는가 하면, 집주인이 매수자에게 집을 판 동시에 시세보다 훨씬 높은 고가전세로 살게 해달라고 계약조건을 거는, 일명 ‘세일즈앤리스백’(부동산 매각 후 재임차)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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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중개시장에 따르면 헬리오시티 전용 84㎡짜리 아파트는 현재 매매는 호가 20억원, 전세는 12억원 수준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김씨에게 제안한 전세가는 13억원. 김씨는 7억원의 차액만 있으면 이 집을 살 수 있다.
가락동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과 매수자 모두 시세가 아닌 호가에 맞춰 전세 거래를 하기 때문에 서로가 윈윈”이라며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사적 거래를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저금리, 새 임대차법 등과 얽힌 전세난에서 빚어진 것으로, 정부가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 랩장은 “매수자 입장에서는 고가주택을 구매하려면 대출도 어렵고 매도자 측면에서는 집을 팔아도 갈 수 있는 전세가 없어 빚어진, 서로의 니즈가 맞물린 현상”이라면서도 “다만 임대차를 정상가격이 아닌 과도하게 높은 가격에 거래한다면 문제의 소지는 있다”고 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세 물건이 없고 거주할 곳이 없어서 발생하는 현상들로, 정부 정책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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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문화촌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 이모씨(35)는 지난 4월 2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연장했다. 반면 같은 단지에 같은 평형 세입자는 최근 5억원의 전세금을 내고 입주했다. 이모씨는 “전세 연장을 안했으면 정말 길거리에 나 앉을 뻔 했다”면서도 “다만 2년 뒤 최소 2억4000만원의 보증금을 더 올려줘야하는데,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는 전세 계약을 위해 10여명이 모였다. 전셋집 하나에 아홉팀이 줄을 선 것이다. 이 중 한팀만이 계약이 성사됐는데, 계약자를 정한 방식은 다름 아닌 ‘제비뽑기’다. 이 사실은 한 네티즌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려 화제가 됐다. 이 단지는 1993년 입주한 1000가구 규모 아파트로, 올해 1월에는 전용 50㎡가 2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됐지만 이달 초에는 3억3500만원에 계약이 체결됐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작금의 부동산시장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촌극이 발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면서 “정부가 졸속으로 정책을 쏟아낸 결과가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