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우 교수 | |
[이데일리] 어떤 종류의 협상이든 협상가들은 다양한 형태의 전략을 구사한다. 상대가 누구며 무엇을 원하며 어떤 약점을 갖고 있으며 협상이 내게 어떤 의미와 이익이 있는가에 따라 차별화된 전략을 적용한다.
그러나 협상가들이, 특히 능력 있는 협상가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있다. 바로 `TIP`다. TIP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Time(시간), Information(정보), Program(계획 또는 시나리오)이다. 다른 하나는 앞선 TIP의 효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되는 것으로 Timing(시의성), Intuition(직관력), Power(추진력)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 두 TIP간의 관계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이 충분해도 정보가 없거나 시간과 정보를 전략적으로 운용할 프로그램이 없다면 협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시간과 정보와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 적절한 정보를 활용해 상대를 설득할 것인지에 대한 추진력이 없다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란 쉽지 않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설득과 압박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바로 TIP 중 `I` 인 정확한 정보와 직관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한-미 FTA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국민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고, 시의적절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직관력도 부족했다.
반면 청계천 복원사업 관련 협상은 두 가지 의미의 TIP을 충족시켰다. 직도사격장 협상의 경우에는 협상의 마감시한이 정해져 있었다는 측면에서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시의적절한 제안으로 주민 설득을 추진했다.
협상에 있어 TIP 만큼 필요한 것이 협상가의 `바보스러운` 자세다. 협상이란 과정보다 결과이며,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협상에서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가 미친 사람, 비합리적인 사람, 그리고 바보다. 하지만 협상의 상대가 미쳤다거나 비합리적일 수는 없기 때문에 최소한 바보스러울 필요가 있다.
사실 협상에서는 상대의 전략을 읽는 명석함과 직관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명석함을 숨기지 못하고 너무도 똑부러지는 자세로 상대를 대하면 협상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힘들다.
신라가 백제의 침입을 받아 위기에 처했을 때 김춘추가 을지문덕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을지문덕은 연회를 베풀며 적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부하의 목을 잘라 김춘추가 원군요청을 위한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이후 두 사람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이렇듯 협상에서는 바보스러움이 똑똑함보다 유리한 경우가 많다.
북한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과의 협상에서 우리 정부는 똑똑한 자세를 견지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 핵의 의미와 위험 정도를 우리가 나서서 우리 입장에서 설명한다. 그럼으로써 6자 회담국의 나머지 4개국들로부터 `소극적 대응`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협상 당사자로서 충분한 TIP의 여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바보스러운 협상 자세가 바람직하다. 바보스러움은 우직함이요, 카리스마이자 리더십이며, 상대를 초조하게 만든다. 심지어 상대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한다.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우주전쟁에 대비한 방어 체제를 준비하기 시작하자 의회와 국민들은 환상 속에 산다며 레이건의 바보스러움을 놀리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그들의 놀림을 즐기면서 바보의 논리로 필요성을 주장했다. 의회는 레이건의 바보 노릇을 즐긴 대가로 예산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협상가는 바보일 때 빛이 나고 TIP을 얻을 때 더욱 힘을 발하게 된다. 만약 TIP을 못 얻었을 경우에는 더욱 바보스러울 필요가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이선우 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교수(bunte@knou.ac.kr)
-現 KDI 국제정책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자문위원
-現 국무총리실 정책평가위원회 전문위원
-現 서울특별시 시민평가단 위원
-前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초청연구원
-前 미국 시라큐스 대학 중재기관 조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