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무능' 드러낸 정부의 대북정책(종합)

이희호 여사 방북일에 남북 대화제의 서한 전하려다 실패
정부 "경원선 기공식에 맞추려던 것 뿐…이 여사 방북과는 연관 없어"
김대중 평화센터 "방북 다음날 정부 대화제의 알아…일을 어렵게 만들어"
  • 등록 2015-08-10 오후 12:53:57

    수정 2015-08-10 오후 5:40:28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정부가 이희호 여사 방북 당일에 북한에 남북 고위급 대화를 제의하는 서한을 전하려다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근혜정부 대북 정책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10일 통일부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5일 통일부 장관 명의의 서한을 통해 북측 통일전선부장에게 남북 고위급 인사간 회담을 갖고 남북간 상호관심 사안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하자고 제의하려 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은 상부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 없다면서 오늘 아침까지 우리측 서한 자체를 수령하지 않고 있다”면서 북측이 사실상 서한 수령 자체를 거부했다고 확인했다.

통상 남북간에 전통문이나 서신 등을 주고받을 때는 접수 전에 간략하게 내용을 알려주고 접수 여부를 확인한다.

이 여사 방북일에 굳이 대화 제의 서한 보내야 했나?

정부는 북측이 또다시 대화 제의 자체를 거부한 것에 대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북측의 부정적인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비판하고 나섰지만, 일각에서는 대화 제의의 시기와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준희 대변인은 “정부는 우리 당국의 공식적인 대화 제의 서한 전달의사를 밝히고 충분한 검토 시간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접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하는 바”이라며 “이는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와 진정성이 있는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정부가 전달하려 했던 대북 서한에는 △이산가족상봉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개최 △경원선 복원 △DMZ 세계 생태평화공원 건립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 등의 현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광복절 계기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광복 70주년 공동행사 개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것치고는 남북 회담 제의 날짜가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광복절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이희호 여사가 북한을 방문하는 첫날 오전에 굳이 대화 제의 서한을 보내겠다고 한 데는 다른 숨은뜻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 정부가 남북 관계를 풀지 못하고 점점 더 경색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출신 전 대통령의 영부인에게 공(功)을 넘기지 않기 위해 따로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여사가 지난 8일 귀국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민간 신분인 저는 이번 방문에 어떠한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6·15 정신을 기리며 키우는데 일조를 하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힌 것이 정부에 대해 일말의 섭섭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 아니겠냐는 해석도 있다.

김대중평화센터측도 정부가 대북 서한을 보내려 했던 사실을 방북 이틀째인 6일에야 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당혹스러웠다”며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정부측에 유감을 표했다.

또 다시 드러난 전략의 부재…대북 정책 ‘위기 ’

정부는 이같은 해석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정 대변인은 “올해는 광복 70주년이고, 8·15 이전에 시급한 이산가족 상봉부터 비롯해서 남북간 현안을 풀어야 된다는 그런 필요소들이 많았다”며 “그 시점을 보고자 했던 것이고 그것이 경원선 기공식(5일) 바로 직후에 보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8·15 이후도 검토했으나 훨씬 더 당겨서 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판단 하에 기공식과 연동해서 같이 제의한 것”이라며 이 여사 방북과 남북 대화 제의는 상관관계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부 입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동안 사례를 비춰보면 전략적인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앞서 이 여사 방북 이전에 “이 여사가 대통령의 친서나 메시지를 가져간다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확률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면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한 대북관계 전문가도 “이 여사 방문이 한달여 전에 결정된 만큼 이미 나와 있는 변수였다”며 “광복 70주년 기념 공동행사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7월 말쯤에 남북대화를 제의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대북 정책을 최종 판단하고 결정하는 청와대의 남북 관계 개선 의지와 대북 정책에 있어서의 치밀한 전략이 부재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대해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북한의 행태를 볼 때 남북 대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올해 들어 여러 가지 외교적인 결례도 있었고 우리 쪽의 수많은 대화제의들을 다 무산시키거나 거부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당초 정부는 민간에서는 교류로 (북한에) 가고 정부쪽에서는 공식적으로 대화 제의를 하는 ‘투트랙’ 전략의 의도도 있었다”며 “(남북 대화 제의는) 민간 차원에서 추진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날 SBS ‘한수진 전망대’에 나와 “추진 과정에서부터 다음 그 결과까지 가장 잘 아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박지원이 아닌가 생각한다”면서 “저는 말씀드리지만 정부가 추진 과정에서부터 정직하지 못한 것만은 지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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