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괴물이 다 해롭진 않은데"…폐업 내몰린 슬라임 카페의 하소연

인기 장난감 액체괴물 유해성 논란에 부모들 외면
업주들 "매출 줄어 폐업할 판"…협회차원 공동대응 논의
전문가 "위험성 다소 과장…정부 올바른 정보 알려야"
  • 등록 2019-01-09 오전 10:31:10

    수정 2019-01-09 오전 10:31:10

지난 8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액체괴물(슬라임)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특정 제품 때문에 인체에 무해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들까지 피해보고 있다”며 하소연 했다.(사진=황현규 기자)


[글·사진= 이데일리 최정훈 황현규 기자] 지난 8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액체괴물(슬라임) 카페`. 방학 기간이라서 아이들이 많이 찾을 법도 하지만 카페 내부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이 한산했다. 지난해 아이들을 중심으로 액체괴물이 큰 인기를 끌면서 액체괴물 카페를 창업했다는 차모(42)씨는 `원래 이렇게 손님이 없느냐`는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씨는 “지난해 말부터 2주간 액체괴물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이 나온 뒤부터 찾아오는 발길이 뚝 끊겼다”며 “우리 카페는 정부에서 문제라고 한 액체괴물과 달리 인체에 해롭지 않은 원료만 사용한다고 홍보해도 손님들은 여전히 방문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장난감 액체괴물이 유해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액체괴물을 체험하는 이른바 액체괴물 카페들이 폐업 위기에 놓였다. 카페 점주들은 일부 액체괴물 탓에 해롭지 않은 제품까지 오해를 받는다며 협회까지 만들어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액체괴물에 대한 “유해성이 과장된 측면도 있다”며 “정부가 자세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에 액체괴물 카페 100여개 운영…부모들 “액체 괴물 위험성 걱정된다”

액체괴물 카페는 지난해 초부터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창업 열풍이 불었다. 액체괴물은 말랑말랑한 촉감과 모양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액체괴물은 물·물풀·색소·붕사 등 몇 가지 재료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는데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벼워 진입 장벽도 낮다.

여기에다 액체괴물이 아이들의 소근육(손이나 손가락 등의 움직임과 관련된 작은 근육) 발달과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연인들의 이색 데이트 장소로 꼽히면서 창업이 폭발적으로 늘어 현재 전국에 100여 개가 넘는 액체괴물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일부 액체괴물 제품에 대한 유해성 논란이 일면서 상황은 갑자기 달라졌다. 지난달 20일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일부 액체괴물 제품에서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CMIT와 MIT는 6246명(지난해 12월 28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통계자료 기준)의 피해자를 낳았던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됐던 몸에 해로운 성분이다.

지난 3일에는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와 보건대학원이 일부 액체괴물 제품에서 유럽연합(EU)의 기준치를 넘는 붕소 화합물이 발견됐다고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붕소 화합물이 사람의 생식기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고 정상적인 발달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소근육 발달과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액체괴물 카페를 즐겨 찾던 학부모들은 불안한 마음에 카페로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7살 자녀를 둔 정모(37·여)씨는 “아이들이 액체괴물을 좋아해 카페를 자주 찾았는데 몸에 해롭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며 “카페 측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액체괴물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5살 자녀를 키우는 김모(35·여)씨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액체괴물 카페의 제품들도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 8일 방문한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슬라임 카페는 방한 기간임에도 손님이 거의 방문하지 않고 한산한 모습이었다.(사진=황현규 기자)


업주들 “일부 제품 탓에 모든 액체괴물 해롭다는 인식 생겨 억울해”

액체괴물 카페의 창업주들은 문제가 있는 일부 제품 때문에 모든 액체괴물이 몸에 해롭다는 인식이 생겨 매출이 급격히 줄어 폐업 위기에 놓였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액체괴물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여)씨는 “우리 카페는 문제가 된 제품과 달리 안정성을 인정받은 액체괴물 재료인 물풀과 베이킹소다, 렌즈세척제 만을 사용해서 인체에 해롭지 않다”며 “카페 앞에 포스터를 붙이는 등 홍보하고 있지만 여전히 손님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창업한 지 3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유해성 논란 이후 매출이 5분의 1로 떨어졌다”며 “창업하고 첫 한 달은 하루에 수십 명이 방문했지만 지금은 하루에 3명도 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액체괴물 유해성 논란으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창업주들은 참좋은슬라임이라는 협회까지 만들어 단체 행동도 논의하고 있다. 차순욱 참좋은슬라임협회장은 “협회에 가입된 액체괴물 카페는 100여 개다. 창업을 준비 중인 카페까지 포함하면 200여 개”라며 “현재 액체괴물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재료들은 모두 유해물질 안전 기준치를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협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액체괴물에 대한 악의적인 정보에 대해 공동 대응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제품들은 정상적인 루트로 판매·제조하고 있는 업체에서 나올 수가 없는 제품”이라며 “정부가 특정 액체괴물로 국민 불안감만 조장하고 안전한 제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창업자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 “논란 일으킨 유해물질 위험하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액체괴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유해물질과 비유해물질을 구분해 국민에게 자세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액체괴물은 197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에서 유행한 어린이 장난감으로 위험성 자체가 상당히 과장돼 있다”며 “서울대에서 지적한 붕소 화합물인 붕사는 예전부터 세제로 활용돼 온 비누 정도의 물질이다. 당연히 먹어서 좋을 것은 없지만 위험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슬라임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액체괴물 유해성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참좋은슬라임(참슬)협회에 가입해 홍보하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이어 “액체괴물에서 검출된 CMIT·MIT도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보존제로 호흡기에 오랜 시간 노출됐을 때 문제가 되는 성분”이라며 “액체괴물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호흡기에 들어갈 위험도 없는데다 이 성분이 없으면 액체괴물이 썩어서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교수는 “민감한 사람이 빨랫비누를 만지면 피부가 빨개지듯이 피부가 약한 아이들은 비닐장갑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며 “액체괴물이 물에 잘 녹지 않는 만큼 하수구나 변기에 버리지 말고 말려서 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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