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뮤지션' 정재일과 서울시향 첫 협연 보고 왔습니다[알쓸공소]

서울숲서 열린 서울시향 '2024 파크 콘서트'
'오징어 게임' '기생충' OST 등 선보여
리코더·신시사이저·피아노로 이색 무대
신작 작곡 위촉, 이르면 내년 발표할 듯
  • 등록 2024-09-27 오후 2:00:00

    수정 2024-09-27 오후 2:00:00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 열린 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연주자·작곡가·음악감독 정재일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OST 메들리에서 리코더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서울시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21일 토요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을 다녀왔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 ‘2024 파크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지난해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처음 선보인 공연인데요. 올해는 서울숲 가족마당으로 장소를 옮겨 관객과 다시 만났습니다.

사실 야외 클래식 공연은 일종의 이벤트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날 공연이 무척 궁금했습니다. ‘천재 뮤지션’ 정재일이 서울시향과 처음으로 협연하는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연주자·작곡가·음악감독인 정재일은 지금 대중에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영화 ‘기생충’의 음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츠베덴 음악감독은 취임 전부터 정재일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며 그와의 협업 의지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그 첫 발걸음이 이번 ‘2024 파크 콘서트’였습니다.

지난해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 열린 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연주자·작곡가·음악감독 정재일이 영화 ‘기생충’ 사운드트랙 ‘믿음의 벨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서울시향)
정재일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1999년입니다. 가수 이적, 기타리스트 한상원, 피아니스트 정원영 등이 결성했던 ‘슈퍼밴드’ 긱스(GIGS)의 멤버로 알게 됐습니다. 당시 정재일의 나이는 17세. 밴드에선 베이스를 맡고 있었지만, 이미 10대 때부터 기타와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천재 뮤지션’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긱스 활동이 끝난 뒤에는 솔로 앨범을 냈다는 소식, 그리고 가수 박효신과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들었는데요. 그리고는 한참 동안 정재일의 이름을 잊고 있었습니다. 공연 분야를 취재하면서 그의 이름을 다시 듣게 됐죠. 영화, 드라마 음악 작업을 한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지만, 연극과 창극 등 공연 분야에서도 음악 작업을 매우 활발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소리꾼 한승석과 함께 발표한 2장의 앨범도 인상 깊었고요. 국악과 클래식, 대중음악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채로운 작업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시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정재일은 ‘오징어 게임’ OST 메들리, 그리고 ‘기생충’ 사운드트랙 중 ‘믿음의 벨트’를 선보였습니다. 국내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업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일까요. 첫 등장 당시 정재일은 다소 긴장된 모습이었습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그런 정재일을 환한 미소로 반겨줬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 열린 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사진=서울시향)
서울시향과 첫 협연은 당연히 피아노 연주로 시작할 거라 생각했는데요. 정재일이 처음 연주한 악기는 리코더였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대표하는 테마곡인 ‘그때 그 시절’의 도입부가 흘러나왔습니다. 이어 작은 신시사이저로 ‘분홍병정’의 멜로디가 흘러나왔고요. 드라마에서 펼쳐졌던 목숨을 건 게임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오징어 게임’ 메들리 연주를 마친 정재일은 곧바로 ‘기생충’ 사운드트랙 ‘믿음의 벨트’ 연주를 이어갔습니다. 이 곡은 봉준호 감독이 정재일에게 “바로크 풍으로 우아하지 않지만 우아한 척 하는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따라 작곡한 곡인데요. 영화 개봉 이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바로크 음악인 줄 알았다 정재일의 자작곡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름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계기가 된 곡입니다. 서울시향의 반주에 맞춰 펼쳐진 정재일의 피아노 연주는 열정적이었습니다. 야외 공연이다 보니 다소 산만한 분위기도 없지 않았는데요. 실내에서 다시 한 번 듣고 싶은 협연이었습니다.

츠베덴 음악감독 “파크 콘서트, 서울시향 새 전통으로”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 열린 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사진=서울시향)
서울시향 관계자에 따르면 츠베덴 음악감독은 이번 정재일과의 협연 준비 과정이 매우 흡족했다고 합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연습 과정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정재일에게 한 번 더 호흡을 맞춰볼 것을 요청했고, 정재일도 흔쾌히 수락해 공을 들여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정재일과 서울시향의 협업은 이번이 끝이 아닙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지난해 11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작곡가에게 신작 위촉 의사를 밝히면서 정재일을 지목하기도 했는데요. 현재 정재일은 서울시향과 함께 선보일 신곡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클래식 비전공자인 정재일이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시향과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궁금한데요. 이르면 내년 중 그 결과물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날 공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가수 규현의 무대였습니다. 규현은 자신의 히트곡 ‘광화문에서’와 뮤지컬 ‘팬텀’의 넘버 ‘그 어디에’, 그리고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깊은 밤을 날아서’를 불렀는데요. 특히 ‘깊은 밤을 날아서’는 오케스트라 편곡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에게는 낯선 한국 가요였을텐데요. 규현이 부른 노래가 마음에 들어 멜로디를 계속 되새기며 지휘를 준비했다는 후문입니다

이날 공연에서 츠베덴 음악감독은 “서울숲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연하는 것이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 매년 이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이 서울시향의 새로운 전통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이 서울시향에 오기 전 있었던 뉴욕 필하모닉은 1965년부터 센트럴 파크에서 거의 매년 무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향의 ‘파크 콘서트’도 그런 전통을 이어가면 좋겠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가족마당에서 열린 2024 서울시향 파크 콘서트. 가수 규현이 노래하고 있다. (사진=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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