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 12년 초장기 집권 선례 남길듯

회장 직제 신설은 성동격서 위한 안건?…이 의장, 순조롭게 연임
“당분간 회장·부회장 없을 것”…“이사회 의장 발언권이 가장 세”
  • 등록 2024-03-15 오후 4:07:48

    수정 2024-03-15 오후 4:14:38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이정희 유한양행(000100) 기타비상무이사(73)가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되면서 이사회 멤버로서 자리를 지키게 됐다. 이제 이사회결의를 거쳐 의장이 되면 12년간 이사회 의장을 하게 되는 수순을 밟게 된다. 회장·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선 이사회 의장이 회사 내에서 가장 입김이 강할 것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이정희 기타비상무이사, 유한양행 이사회 남는다

유한양행은 15일 서울 유한양행 본사 4층에서 열린 제101기 정기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이날 주요 안건이었던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 안건은 갑론을박 끝에 어렵게 통과됐지만 나머지 안건들은 순조롭게 통과됐다. 모든 안건이 원안대로 가결되면서 이날 주총은 11시 40분에 종료됐다.

이정희 유한양행 기타비상무이사 (사진=유한양행)
특히 이 의장은 자신에 대한 기타비상무이사 재선임 안건이 통과되면서 유한양행 이사회에 남을 수 있게 됐다. 기타비상무이사는 회사에 정기적으로 출근하지 않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경영진을 감시하고 경영상 중요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 의장은 언론을 통해 수차례 본인이 회장이 될 뜻이 없다고 밝혀왔지만 이사회에 남는 문제에 대해서는 “주총에서 결의되면 이사회 멤버로 남는 것”이라고 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주총에서 이 의장이 기타비상무이사로 연임에 성공한 만큼 이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의장직으로 추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오후 3시 현재 유한양행 이사회는 열리지 않았으며, 계열사들의 주총까지 끝난 후 개최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날 이사회 결의는 늦은 저녁에나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에 이 의장이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되면 무려 12년간 의장직을 유지하게 된다. 이는 대부분 이사회 의장 자리를 길어야 6년 했던 것에 비해 이례적으로 긴 기간이다. 그간 대부분의 전임 대표이사 사장들은 관행에 따라 임기 만료 뒤 회사를 떠나면서 이사회 의장 자리도 내려놨다.

이 의장의 경우 이와 대조적으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되면서 대표이사 사장 당시 맡고 있던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했다. 신임 사장의 부탁에 따른 결정이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 의장은 정기 주총을 마친 후 기타비상무이사 연임을 통한 이사회 의장직 연장은 이번이 마지막이냐는 질문에 “(기타비상무이사직은) 2번 밖에 못 한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하지만 이 의장은 유한양행의 대표이사 출신으로 이사회 의장을 12년간 연임하며 장기집권하는 선례를 남기면서 향후 언제든 제2의 이정희 의장이 등장할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장·부회장 없다면 이사회 의장 발언권이 가장 세”

이 의장이 또 유한양행 의장직에 오른다면 기업 지배구조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회사 안팎에서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3월 개정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가 맡아야 한다. 이미 유한양행은 이 의장이 의장이었을 때에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완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구나 유한양행에 회장·부회장 직제가 없다면 가장 의사결정권이 막강한 인물은 이사회 의장이 된다. 유한양행은 이번 주총에서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이 가결되면서 회장·부회장 직제가 28년 만에 부활했지만 당분간 해당 직위를 채울 인사를 따로 영입할 의사가 없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날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했다고 해서 지금 당장 이런 분들을 어디서 모셔오자는 뜻은 아니다”라며 “준비를 해놓은 건 아무 것도 없고 미래를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모두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데 이사회 의장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회장, 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서 사장이 이사회 의장이 아니고 이사회 멤버라면 이사회 의장의 의사결정권이 더 강해지게된다”고 언급했다.

이 의장은 유한양행의 막후 경영을 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렸던 인물이다. 최근에는 회장 직제 신설과 관련해 장기 집권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회사 측은 “이 의장은 의장직을 잘 수행하는 것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동격서로 이 의장만 실속 차렸나?

일각에선 회장 직제 신설에 이목을 집중시킨 뒤 이 의장의 기타비상무이사 연임을 순조롭게 통과시켜 이 의장만 실속을 차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실제로 이날 주총에서 가장 주목받은 안건은 회장·부회장 직위 신설 안건이었다. 1시간 40분간 진행된 주총 중 대부분의 시간이 해당 안건에 대한 주주들의 찬반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데 할애됐다.

한 유한양행 주주는 “차라리 스톡옵션을 도입하라”면서 “연구개발(R&D)을 회장, 부회장이 합니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또 다른 주주는 “조직이 매너리즘에 빠지고 조금 올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경영진이 젊은 피를 수혈하고 더 스마트하고 젊은 사람들을 위해 용퇴할 의향은 없나”라고 물으면서 주주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 의장은 현재 73세이며, 조 대표는 69세, 김열홍 R&D 총괄 사장은 65세다.

유한양행의 OB 모임인 유우회와 유한양행 노조위원장은 회장 직제에 대해 찬성 의사를 드러냈다. 김인수 유우회 회장은 “유한양행이 현 시점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직제 신설이 필요한 시기”라며 “선임 절차는 객관적인 절차가 필요한 만큼 가칭 선임추천위원회를 구성해달라”고 했다. 황우수 유한양행 노조위원장도 “유한양행은 어느 특정인에 의해서 사유화되지 않는다”며 “만약 그런 움직임이 보인다면 우리 노동조합에서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안건이 표 대결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오랜 논의 끝에 일괄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처리됐다. 해당 안건은 출석의결권수의 3분의2 이상과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의 찬성으로 원안대로 통과됐다. 약 95% 찬성률이라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조 대표는 “대표이사로서 유일한 정신에 어긋나지 않도록, 회사의 사유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염려가 안되도록 제가 있는 동안에는 틀림없이 잘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유한양행은 15일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사진=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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