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국가백신사업 입찰에 참여하며 담합한 혐의를 받는 6개 제약사가 벌금형을 받았던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 서울고법 전경. (사진=백주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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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이창형)는 23일 공정거래법 위반·입찰방해 혐의로 기소된 GC녹십자·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보령바이오파마·유한양행(000100)·SK디스커버리(006120)·광동제약(009290) 등 6개 제약·바이오 업체와 임직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재판부는 제약사와 백신 공급사 등의 공동 판매 등 관계성을 고려할 때 “실제로 제3의 업체가 입찰에 참여해도 최종 낙찰자가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며 “입찰과정에서 제3의 업체와 실질적인 경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도 촉박했던 국가백신사업 시기를 맞추기 위해 당초 조달청에 수의계약을 문의했고, 이 사건 이후 실제 수의계약이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하면 질병관리본부도 실질적 경쟁이 가능하단 인식이 있지 않았음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약사의 들러리 입찰은 실질 경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시기를 맞추기 위한 질병관리본부의 종용·압박이 배경”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입찰을 받은 국내 제약사 외 실제 낙찰받을 가능성이 있는 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경쟁입찰이라고 보기 어렵고, 이마저도 정부기관의 관례적인 종용에 의한 것이라는 피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낙찰 금액을 끌어올렸단 혐의에 대해서도 사실상 질병관리본부가 정한 추정 단가에 근접한 금액으로 결정됐다며 “부당한 공동행위로 입찰 공정을 해하는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검찰은 2019년 공정거래위원회가 7000억원대 입찰 담합 혐의로 제약사 수십곳에 무더기 과징금 처분을 내린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들에 대한 혐의를 추가 발견하고 재판에 넘겼다. 6개 제약사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자궁경부암, 결핵, 폐렴구균 백신 등 정부가 발주한 국가백신사업 입찰경쟁에서 사실상 입찰 의지가 없는 도매업체를 ‘들러리’로 세워 입찰 경쟁을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들러리 업체들은 실제 입찰에 참여하는 이들 기업보다 자발적으로 더 높은 가격을 써내 백신 가격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녹십자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각 7000만원, 보령바이오파마와 유한양행에 5000만원, SK디스커버리와 광동제약 3000만원을 선고했다. 업체 임원 7명에게도 각 300만∼5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제약사 측 변호인들은 “가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등 고의성은 없었다”며 “유찰 방지를 종용하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뜻에 따라 들러리 업체를 세워 입찰에 참여했던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또 이들의 행위가 시장에서 실제 부당한 경제 효과를 일으키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