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11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완성차의 시장 지배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가 국내 완성차 업계의 당면 과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원장은 1987년부터 산업연구원에서 자동차산업 연구를 담당했으며, 2020년부터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가 지난해 제9대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에 임명된 자동차 산업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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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은 “주요 국가들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중국산 전기차의 시장 진입을 억제하고 있지만, 중국 기업들은 기술 제휴, 합작투자, 그린필드 투자 등 이같은 장벽을 우회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며 “선진국 시장에서 제약이 있더라도 신흥국 시장에서 가성비(비용 대비 가치)가 높은 전기차 모델을 투입해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해 나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기업 역시 이미 유럽, 동남아시아, 중남미, 중동 시장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다. 이 원장은 “전기차가 내연기관차 시장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점유하게 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현대차·기아 글로벌 판매량) 700만대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부터 BYD 등 중국 완성차 기업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도 격변이 예상된다. 이 원장은 “중국과 패권경쟁에 나서고 있는 미국은 중국산 전기차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며 “중국 전기차업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격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관건으로, 선제적 대응보다는 중국 업체들의 진출 전략을 시시각각 분석하며 민첩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는 원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핵심 원료망을 확보하고, 자체 제작한 배터리를 차량에 탑재하는 등 전기차 원가를 낮추기 위한 핵심 부품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배터리 외에도 구동 모터 등 핵심 부품을 내재화하는 건 불가피하지만, 다양한 기능 모두를 내재화할 수는 없다”며 “전기·전자 기술 등 국내외 기업과 기술 보완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추진해 시너지 효과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정부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 원장은 “민간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보조금과 금융세제 정책, 규제 정책, 인력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미래차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등에 대한 민관의 투자와 전문인력 양성이 중요한 축이며,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지원 역시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