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투자는 MVP 테스트 후에”…초기 단계 문턱도 높아졌다

사업계획서만 있으면 투자 유치되는 줄 알았더니
VC들 최근들어 "성장성 외 수익성 근거 제시해라"
스타트업들, 정부 지원금으로 MVP 만들기 박차
  • 등록 2022-09-07 오후 4:09:24

    수정 2022-09-07 오후 9:51:33

[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사업성은 있어 보이네요. 우선 최소기능제품(MVP) 테스트로 성장지표부터 만들면 그 이후에 투자 논의는 다시 하시죠.”

초기 투자 라운드를 준비하던 국내 A 스타트업의 한 대표가 벤처캐피털(VC)을 비롯한 투자사들로부터 들은 말이다.

프리시드와 시드 등 초기 투자에 나서는 스타트업들을 바라보는 투자 업계 눈높이가 한층 높아졌다. 지난해 유동성 파티를 벌인 VC들은 성장 가능성을 보고 스타트업에 막대한 투자를 집행했지만, 대내외적 경기 상황이 급변하면서 투자 기조를 달리하는 모양새다. 특히 호황기에 투자받아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스타트업 일부가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한 채 몸값만 높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지자 이러한 리스크를 솎아내자는 공감대도 형성되는 분위기다.

사진=픽사베이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사들은 초기 투자에 나서는 스타트업들에 성장성과 수익성을 골고루 나타내는 MVP를 들고 오라고 주문하고 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들이 정부 지원금을 토대로 발등에 불 떨어지듯 관련 근거를 만들고 있는 배경이다.

투자 시장 분위기가 엄격해진 것은 올해 2분기부터다. VC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 연준의 금리 인상 등 세계 경기 불확실성으로 신중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개념을 토대로 이용자 수를 늘리고 설령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을 내는, 이른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에 베팅해온 지난해와는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현재는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은 기본이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와 건전성, 흑자 전환 가능 모델 보유 여부 등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서 마켓컬리와 직방, 당근마켓, 리멤버 등 급격한 외형 성장을 이룬 스타트업을 두고 “수익성을 개선하지 못하면 기업공개(IPO)시 시장 전망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돈다. 이들이 적자 구조를 개선하고자 자체 솔루션 사업을 추가로 영위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최근 초기 투자에 나섰다가 계획을 철회한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는 “유저 확보는 기본이고, 어떠한 비즈니스 모델로 어느 수준의 수익을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근거를 가져오라는 투자사들이 늘었다”며 “알파 버전 출시에 박차를 가하게 된 이유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금을 바탕으로 완성도 있는 서비스를 출시하려는 마음이 컸지만, 우선 시장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유 등에 대한 근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스타트업 데이터 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유치 규모는 전 분기 대비 23% 감소한 1085억달러(약 145조원)로 나타났다. 투자 건수도 1분기 대비 15% 감소한 7651건을 기록했다.

VC 업계 한 관계자는 “탄탄한 사업 계획서로 투자받던 과거와 달리 VC들은 이제 성장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는 뚜렷한 지표를 제시하라고 주문한다”며 “성장성 근거를 제시하라는 VC들의 기조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더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인 만큼, 이러한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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