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 첫 방문 실태조사…"신체·정신·경제적 피해 심각"

피해자들 살균제 노출 이후 폐질환 등 크게 증가
일반인에 비해 자살 시도 4.5배 많아…우울증 ·불안장애도 증가
성인 피해자 66% 만성적 울분…"죄책감 느끼는 피해자 다수"
100가구 기준 경제적 피해 최대 539억 800만원 추산
  • 등록 2019-03-14 오후 12:52:41

    수정 2019-03-14 오후 12:52:41

14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 참사 피해가정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에서 조사기관인 한국역학회의 연구책임자인 김동현 교수(왼쪽에서 세번째)가 조사결과를 발표한 뒤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신체적 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과 경제적 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4일 오전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 마련된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2018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정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가습기 참사 이후 피해자 가정을 직접 방문해 조사를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폐 등 여러 신체 장기에 나타나…정신건강도 심각한 수준

한국역학회는 특조위의 의뢰를 받고 지난해 10월 2일부터 12월 20일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로 신청 및 판정 완료된 4127가구 중 100가구를 무작위로 추출해 신체·정신·사회경제·심리적 피해를 심층 조사했다.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피해가 폐질환을 넘어 여러 신체 장기에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습기 살균제 노출 이후 성인 피해자의 경우 비염·비질환(63.5%), 폐질환(53.6%)이 있었고 간질 등 신경계질환이나 암 질환 등도 악화되거나 새로이 발생했다. 아동·청소년의 경우에도 노출 이후 비염·비질환(80.8%)과 폐질환(76.7%)이 크게 증가했다.

피해자들은 신체 질환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인 피해자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자살 생각이 1.5배, 자살 시도는 4.5배 많았다. 노출 이후 수면장애나 우울증, 불안장애를 겪는 피해자도 있었다.

김동현 한국역학회 회장은 “SK케미칼에서 살균제 물질을 제조해 시판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사전예방 실패했고 건강피해를 확산했다. 정부는 사후조치도 지연했다”며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일부 표본 조사를 통해서라도 신속하게 피해자 지원과 대응 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피해자 보상 제한 극복위해 정책 획기적으로 바꿔야”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심리·사회적 피해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성인 피해자의 약 66%가 만성적인 울분 상태를 보였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중증도 이상의 심각한 울분을 호소했다.

유명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울분은 부정적이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에 발생하는 감정”이라며 “‘본인이 선택해 제품을 샀는데 아이나 부모를 아프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피해자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연구팀이 만난 한 피해자는 “(가습기 살균 피해를) 피해자한테 자꾸 증명하라고 하면 저는 가습기를 다시 흡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경제적 피해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조사한 100가구 기준으로 경제적 피해비용은 최소 125억 8000만원에서 최대 539억 8000만원으로 추산됐다. 거기다 피해자들은 피해 인정 신청결과 통보까지 평균 1년 이상이 소요되며 피해자들의 80% 이상이 통보까지 경과된 시간에 대해 적절하지 못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이날 조사 발표에 참석한 한 피해자는 “내가 산 가습기 살균제로 부모님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며 “현재 기준으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다수를 위해 보상 기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황전원 특조위 지원소위원장은 “이번 연구의 시간적 물리적 제약을 고려해도 피해자들의 질환은 정부가 피해자로 인정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서고 있다”며 “피해자 보상의 제한을 극복하기 위해 정책의 획기적 변화를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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