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연지 기자] 글로벌 경기 침체로 전 세계 벤처 시장이 주춤하는 가운데 ‘세계적 창업국가’로 꼽히는 이스라엘 기반 벤처캐피탈(VC)들이 함박웃음이다. 펀드 출자자들이 이스라엘과 같이 단기간에 유니콘 기업 수를 늘리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국가로 투자 지역을 다양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다.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독일 등 유럽 혁신 허브로 꼽히는 국가의 VC 펀드 조달 규모가 전년 대비 줄어든 가운데 이스라엘은 이러한 추세를 거스르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 2022년 12월 1일 기준 이스라엘 기반 VC 펀드는 출자자들로부터 지난해 대비 더 높은 수준의 자금을 조달했다./사진=피치북 보고서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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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 등에 따르면 지난 12월 1일까지 유럽 내 186개의 VC 펀드에 총 233억 유로(약 32조 원)의 자금이 모였다. 경기 위축으로 대부분 유럽 국가의 VC들의 펀드 조달 규모가 감소한 가운데 이스라엘 기반 VC들은 지난해 대비 70.6% 늘어난 4조 원을 조달하며 선방했다.
세부적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기반 VC들이 올해 12월 1일까지 출자받은 금액은 총 58억 유로(약 8조 원)다. 이는 지난해 대비 22.6% 감소한 규모다. 프랑스는 지난해 대비 5% 감소한 54억 유로(약 7조4200억 원)를 조달했다. 다수의 VC들은 애초 목표한 규모를 밑도는 수준으로 펀드를 결성했다. 펀드 결성 수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났는데, 예컨대 북유럽의 경우 펀드 결성이 완료된 건은 작년 대비 24건 줄어든 10건로 나타났다.
한 달에도 수십 개의 혁신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는 이스라엘의 사정은 다르다. 이 국가 기반의 VC들은 총 29억 유로(약 4조 원)를 조달했는데, 이는 지난 연간 규모(약 2조2360억 원) 대비 70%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피치북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의 분산투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짚었다. 출자자들이 영국과 아일랜드 등 혁신 허브에 집중투자하기 보다는 투자 지역 다양화로 분산투자를 꾀하며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주요 기관 투자자들은 어려운 경기 상황 속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신흥국을 비롯한 해외 각지로 투자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세계 1위이라는 점과 함께 기후테크 등 혁신 기술을 다루는 스타트업이 한 달에도 수십 개씩 쏟아지고 있다는 점도 괄목할 만한 점이다. VC 업계 한 관계자는 “이스라엘에서는 혁신 기술을 다루는 스타트업이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초기뿐 아니라 ‘밀도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스라엘에서 유니콘 기업은 최근 2-3년 사이 부쩍 늘어났다. 포브스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2022년 현재까지 탄생한 유니콘 기업은 92개다. 20곳을 겨우 넘었던 지난 2019년에 비해 4배 이상 늘었다. 유니콘 기업이 탄생할 경우 해당 기업에 발 빠르게 투자한 투자사들은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초기 투자에 이어 스타트업 규모를 키우는 스케일업 투자가 속속 이뤄지며 단기간에 유니콘이 탄생하고 있다는 점은 ‘높은 수익률로 빠르게 회수’하고 싶어하는 출자자 입장에서 플러스 요인이기도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글로벌 출자자들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경기 침체로 한 지역에 국한된 투자를 하기보다는 투자 지역과 영역(포트폴리오) 등을 다양화해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움직임”이라며 “이스라엘 기반 VC들은 특히나 자국 투자를 중심으로 글로벌하게 뻗어 나가는 전략을 취하고 있어 펀드 자금 조달 측면에서 유리한 위치를 가져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