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1세기에도 노예는 있다"…건국대 '군기잡기' 논란

방송국 재학생 "선배들에게 부조리한 갑질 당해" 폭로 대자보 붙여
"선배들 술 강요에 여학생 외모 품평까지 일삼아"
방송국 측 "수직적 구조 바꾸지 못한 점 사과"
학교 측 "잘못된 문화와 제도 개선할 것"
  • 등록 2019-03-27 오후 12:37:29

    수정 2019-03-29 오후 5:58:16

2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서울캠퍼스 내 학생회관 앞에 ‘21세기에도 노예가 있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 대자보에는 학교 방송국 소속 학생들이 선배들로부터 부조리한 갑질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사진=권효중 기자)
[사진·글=이데일리 최정훈 권효중 기자] 서울의 한 대학교 내에 재학생들이 선배들로부터 부조리한 갑질인 이른바 ‘군기잡기’를 당했다는 대자보가 붙어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국내 청소·장기자랑 강요 등 갑질 일삼아

27일 건국대학교 서울캠퍼스 앞에 “21세기에도 노예가 있었습니다”라는 제하의 대자보가 붙었다. 자신들을 건국대학교 학원방송국 ABS 소속 학생들이라고 소개한 이들은 “무책임한 선배들에게 수백 수천 번 항의하고 싶었지만 방송국 생활이 두려워 입을 다물어야 했다”며 같은 방송국 선배들로부터 군기잡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대자보에 따르면 이들은 “엠티(MT)에서 부서별 노래를 외우도록 강요하고 외우지 못하면 냄비에 술을 가득 부어 술을 강요했다”며 “노래 가사에는 ‘쪼다, 암캐비, 수캐비’ 등 비하표현도 들어가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어 선배들이 장애인, 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소수자와 미투 운동에 대한 조롱과 함께 ‘OO정도면 50만원 짜리 밥도 사줄 수 있다’는 등 여자 후배들에 대한 품평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방송국에 들어오면 전 방송국원이 학비의 30~70%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선배들이 홍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으려면 3학기를 다녀야 하고 장학금은 학비의 30%의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이외에도 △식사와 수면시간을 보장하지 않는 스케줄 △신입 방송국원에게 장기자랑 강요 △방송국 내 청소 강요 △무분별한 비난과 인격 모독성 발언 등의 갑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심지어 방송국에서 쓰이는 음원을 모두 유튜브 음원을 불법으로 추출해 사용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희가 속해있는 집단이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침묵하고 일했다”며 “그러나 앞으로 계속 지속될 악행과 악습 등이 대물림되는 것을 막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국대 방송국 ABS는 입장문을 내고 “수직적인 구조를 바꾸려 했으나 저희들의 노력이 충분하지 못했던 점을 사과한다”며 “방송국의 특성상 한 프로그램을 제작함에 있어 개인적인 활동이 아닌 팀워크가 중시 된다는 점과 이런 점을 비롯해 1961년 학원 방송국 ABS의 개국 이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수직적 조직 문화가 굳어진 점에 대해서는 해명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다만 이들은 “장학금 지급의 경우 ABS 측에 일체의 권한이 없다”며 “학교 측에서 산정된 후 지급되므로 이와 관련해 사실을 숨기거나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어 여자 후배들에 대한 품평과 조롱에 대해서도 “당시 당사자가 해당 후배를 좋아하는 마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과장된 표현”이라며 “품평과 모욕의 의도는 없었다”고 전했다.

학교 측 “잘못된 문화와 제도 개선할 것”

건국대 측은 “선배 기수의 진솔한 사과와 더불어 상세한 경위조사를 통해 잘못된 문화와 제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학가에서 선·후배 간 군기잡기 문제는 끊임 없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음주 강요나 가혹 행위 등 인권 침해를 없애도록 사전 교육을 강화하라고 당부하는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 운영지침’을 각 대학에 내려보내기도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당 갈등은 언론사의 전근대적인 특유의 문화가 남아 있는 영향”이라며 “그러한 조직 문화가 학생 사회에까지 퍼져 있어서 학생들이 이를 답습한 것인데 이러한 문화는 전근대적인 잔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7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서울캠퍼스 내 학생회관 앞에 ‘21세기에도 노예가 있었습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 옆에 해당 방송국 측의 입장문이 붙어 있다(사진=권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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