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검찰이 수사 중인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등의 ‘김학의 출금 수사 외압’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서면서 검찰과의 ‘중복수사’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해당 사건에 대해 ‘유보부 이첩’으로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공수처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수사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김오수 검찰총장(오른쪽)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지난 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만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공수처 제공) |
|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문홍성 대검 부장(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과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당시 대검 수사지휘과장), A 검사가 연루된 사건에 이달 초 ‘2021년 공제 5호’의 사건 번호를 부여하고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반부패·강력부장) 밑에서 근무하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 의혹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는다.
앞서 공수처는 해당 사건 공소권을 두고 검찰과 갈등을 빚었다.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수원지검은 지난 3월 ‘검사 사건 의무 이첩’ 조항인 공수처법 25조 2항에 따라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했다. 하지만 당시 검사·수사관 채용 전이었던 공수처는 같은 달 12일 ‘수사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을 이 고검장의 수사 외압 사건과 함께 검찰로 다시 넘겼다. 당시 공수처는 ‘수사는 검찰에 맡기되, 기소 여부는 공수처가 결정한다’는 유보부 이첩을 요구했고, 수원지검은 “해괴망측한 논리”라며 이를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 속에 수원지검은 지난달 12일 이 고검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공수처의 유보부 이첩 요구를 무시했다. 검찰의 기소로 공소권 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판단은 사법부의 영역으로 옮겨가면서 ‘소강 상태’를 보였던 공수처와 검찰 간 갈등이 최근 또다시 불거졌다. 공수처는 이달 초 검찰이 처분을 내리지 않은 문 부장 등 3명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대검에 ‘재재이첩’을 요청했다. ‘공수처의 범죄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 기관의 수사에, 처장이 수사 진행·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 기관은 응해야 한다’는 공수처법 24조 1항이 근거다. 요청과 동시에 공수처는 ‘재재이첩을 요구하면 사건은 자동으로 입건된다’는 취지의 사건사무규칙에 따라 문 부장 등 3명 사건을 입건했다.
하지만 수원지검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공수처 요청을 또다시 거절하며 수사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검은 공수처 요청에 따라 수원지검에 의견을 물었지만, 수원지검은 지난 7일 공수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대검에 전달했다. 수원지검 관계자는 “수사 여력이 되지 않아 사건을 보내 놓고, 검찰이 거의 수사를 해 놓은 사건에 대해 다시 달라고 하는 것은 검찰에 대해 수사 지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대검은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검찰은 최근 현직 검사 관련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의 승인을 거쳐 공수처에 이첩하도록 하는 예규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 사건을 두고 공수처와 검찰이 각각 수사에 나서는 상황이 발생했다. 법조계선 이미 예상된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공수처 출범으로 동일한 국가 권한에 대한 ‘1기관 1권한’ 원칙이 깨졌으므로, 관할의 충돌은 당연히 예상된 일”이라며 “인권 침해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사 효율성도 떨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입건의 근거가 된 공수처 내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해당 규정은 헌법상 무죄 추정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피의자는 범죄 혐의가 있다는 상당 의심·증거가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범죄 혐의가 명확하지 않은데 이첩 요청만으로 피의자 신분을 부여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