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기초연구비마저 1537억 삭감..고급인재 유출 등 위기감 '솔솔'

기초연구연합 등 성명서···과학계 반발 지속
야당 반발속 국회 예산 심의과정서 논의 본격 전망
감염병·소부장 직격탄···70~80% 삭감도 흔해
소액 과제 신규 중단···기초연구기반구축 15% 삭감
  • 등록 2023-09-20 오후 4:50:08

    수정 2023-09-20 오후 7:28:02

[이데일리 강민구 기자]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정부가 내년도 정부연구개발(R&D) 예산(25조9000억원)을 올해대비 16.6%(5조2000억원) 삭감하고, 이 중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6.2%(1537억원) 줄이기로 했다. 이에 과학계 단체부터 시작해 노동조합, 학생들까지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비효율 타파 의지에 따라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기술패권 경쟁시대에 미국, 영국 등 과학강국들과 비교해 과학사가 짧은데다 투입한 예산 총액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기초과학 예산까지 줄인 것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기초과학 예산은 당장 산업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우주, 양자, 바이오, 반도체 등 다양한 산업 발전에 근간을 이루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인프라 구축시 필요한 예산이다. 미래 산업 성장의 측면에서 가장 기본적인 연구 영역인만큼 중요도가 높다.

하지만 내년도 기초연구비를 보면 기초연구기반구축 R&D 예산이 15% 삭감되고, 다른 주요 사업 예산들 역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해만 하고 끝나는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길게는 4~5년 준비하는 계속 사업의 예산도 줄였고,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연구자와 정부 간 갈등이 내년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노벨상 수상자 배출은 원하면서 정작 씨를 뿌려야 할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간과해 자칫 고급인재가 의료계로 떠나고, 과학강국 종속이 심화할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그런 가운데 야당 국회의원 10명이 21일 ‘기초과학연구 예산 삭감 관련 긴급간담회’를 열고, 기초과학연구 삭감 문제점을 논의한다. 앞으로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승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더불어민주당)는 “연구개발 예산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기초과학 연구는 국가가 투자하지 않으면 연구 생태계 자체가 파괴될 우려가 크다”며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가 R&D 예산 삭감 문제를 따져보고, 꼭 필요한 예산들은 다시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예산안 관련 젊은 과학자와 대화하고 있다.(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기반구축 15%, 감염병 플랫폼 개발 80% 삭감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2024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내년도 개인기초연구, 집단연구지원, 기초연구기반 구축 등의 사업 예산은 올해대비 각각 0.02%, 4.1%, 15.0%씩 감소했다.

기초연구사업은 연간 수천만원부터 7억원 이상 규모의 우수연구자 과제로 구성돼 있다. 신진 연구자들이 중견, 리더 연구자로 발전하도록 설계된 사업인데,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 지원과 비전임 연구자를 지원하던 창의도전사업의 신규 지원 등이 모두 중단됐다. 또 기초연구사업의 급속한 변경 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감염병 대응과 소재, 부품, 장비 관련 기초 연구는 타격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신·변종 감염병 대응 플랫폼 핵심기술 개발사업(80%↓)부터 바이오위해평가 원팀 리노베이션(79.4%↓), 감염병 차세대 백신 기초원천 핵심기술개발사업(80%↓), 극한소재실증연구기반조성(72.7%↓) 등의 사업 예산이 줄었다.

신·변종 감염병 대응 플랫폼 핵심기술 개발사업은 계속 발생하는 감염병의 위협에 대비해 예측부터 진단, 치료, 예방까지 전주기 감염병 기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때문에 이번 예산 삭감으로 우리나라의 차세대 감염병 기술 개발이 이전과 비교해 소홀해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이번 연구비 삭감은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 분야에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수출 대표 제품인 반도체와 관련해서도 차세대지능형반도체기술개발(25.1%↓), 차세대화합물반도체핵심기술개발(19%↓) 등의 예산이 모두 삭감됐다. 또한 우주, 양자 관련 예산이 일부 줄었고, 이 밖에 민군기술협력(32.9%↓). 해양극지기초원천기술개발(46.7%↓), 무인이동체 원천기술개발(23.5%↓) 등 연속 과제 예산 역시 삭감됐다.

과학계 반발 거세져

이번 예산 삭감 추진에 따라 과학계 반발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예산 삭감 철회까지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대한화학회, 대한지질학회, 한국우주과학회 등 국내 27개 학회로 구성된 기초연구연합은 지난 18일 연구 경쟁력 감소와 국제협력사업의 획일적 추진에 따른 예산 낭비, 과학기술패권 약화를 우려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도 발표했다.

연구연합은 성명서에서 “소규모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연구와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의 연구가 단절돼 연구 생태계가 훼손되고, 비전임 연구자 지원 사업도 신규 지원이 중단돼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며 “기초연구비 삭감에 따른 급격한 구조조정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기술계 노조, 학생, 공무원도 나서 예산삭감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국가 과학기술 바로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는 성명서를 통해 삭감된 R&D 사업 및 과제 목록과 삭감 논리를 전부 공개하고, 연대회의 공동대표단과의 토론 개최는 물론 비효율 원인 등을 모두 규명해달라고 촉구했다.

일각에선 설령 기초연구비 삭감이 이대로 확정되더라도 기초과학 투자는 지속시켜 고급인재들이 선순환되는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한민구 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정부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과학계에서) 일부 감내해야 할 부분도 있다”면서도 “국가 기초과학은 노벨상 수상자 배출 등을 위해서라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번에 삭감이 되더라도 정부가 관심을 갖고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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