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예고된 수순’이라는 반응이다. IPO에 도전했던 컬리의 지난 5년간 번복 행보를 되짚어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라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올 정도다. 회사 측에서 ‘향후 기업가치를 온전히 평가받을 시점에 상장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하는 컬리가 증시에 무사히 입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고조된다.
컬리는 지난 4일 기업공개(IPO)를 철회했다. 불확실한 증시 상황이 지속된 데다 4조 원에 달했던 기업가치가 수천억 원대로 대폭 떨어지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이는 그간 ‘상장 철회는 없다’며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 온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다. 지난해 10월 컬리는 본지의 ‘상장 철회 검토’ 단독 보도와 관련해 “정해진 기한 내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철회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IB 업계에서는 컬리가 IPO 잔혹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일찍이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 2021년 12월 컬리에 투자하며 주요 FI로 올라선 홍콩계 사모펀드(PEF) 앵커에쿼티파트너스를 비롯한 일부 투자사들 사이에서는 상장을 미뤄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갔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실제 안상균 앵커PE 대표도 지난해 출자자(LP) 등이 참석한 투자자보고회에서 “컬리 상장에 압박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안에 정통한 IB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9월부터 이미 예고됐던 수순”이라며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증시 침체기 속 IPO 한파를 뚫고 나가는 것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있었고, 컬리 내부에서도 상장 철회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고 말했다.
유턴 또 유턴…컬리 IPO 제자리걸음
증권가에서는 컬리가 유턴을 반복하며 결국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2018년부터 시작된 컬리의 IPO 준비가 순탄치 않았고, 그 과정 속 번복 사례도 수없이 생겨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유니콘 기업에 대한 국내 IPO 상장 규정이 완화되고, 아시아 기업의 미국 증시 입성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점에서 다시 국내로 방향을 선회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유턴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상장 주관사들이 컬리를 떠나보낸 셈이다.
국내 증시로 유턴한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계속됐다. 컬리는 국내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보냈지만 경쟁사인 SSG닷컴의 상장 준비 시기가 겹치며 주관사 선정 시기를 연기했다. 여기에 거래소에서도 예심 과정에서 김슬아 컬리 대표의 지분율이 낮다는 점을 언급하며 컬리 측에 FI의 우호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 심사 통과가 어렵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증권가 한 핵심 관계자는 “이번에는 증시 불확실성도 큰 몫을 했지만, 컬리가 기업가치를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며 “적자 폭을 줄이고 그간 인정받은 기업가치를 증명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종업계 기업들은 기업가치 제고 차원에서 오히려 적자폭을 줄이며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실상 컬리의 ‘이커머스 1호 상장’ 타이틀은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