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어진 인턴기자] 정부가 내년도 정부연구개발(R&D) 예산을 삭감해 과학계에서 파장이 크다. 24년도 R&D 예산은 25조 9천억 원으로 31조 778억 원이던 올해 대비 16.6% 줄었다.
R&D 예산은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새로운 지식축적과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데 지원하는 예산이다.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R&D 사업의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나눠 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9월 6일 방영된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 대학 교수는 “우리가 IMF를 겪었을 때도 R&D 예산을 줄이지 않았다”며 최근 3년간 계속 정부 총지출 대비 R&D 규모가 4.9%를 유지했는데 24년도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는 3.94%라고 했다.
이어 “최근 10년 동안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의) 최저 비율이 4.4%였다”며 “4% 밑으로 내려간 것도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가 4% 밑으로 내려간 것은 드문 일일까. 이종필 교수의 발언에 초점을 맞춰 그간의 R&D 예산 추이를 살펴보려 한다.
◆ 정부 R&D 예산은 33년 만에 삭감됐을까?
먼저, 통계 자료가 있는 1964년부터 2024년까지의 R&D 예산을 확인했다. 정부 R&D 예산 통계는 ‘과학기술관계예산’으로 명명되던 1964년부터 관리되고 있다. 현재 정부 R&D 예산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으로 구성되며 특별회계는 1987년부터, 기금은 1998년부터 각각 포함됐다.
1964년부터 2023년까지의 R&D 예산은‘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23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의 통계 자료를 참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64년부터 2023년까지 R&D 예산은 연평균 17.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정부예산 증가율인 15.6%를 웃도는 값이다.
1964년부터 1990년도까지 계속 증가하던 R&D 예산은 1991년에 전년보다 972억 감소했다. 1992년부터 2023년까지는 다시 꾸준히 증가해 23년도에는 처음으로 30조를 돌파했다. IMF 당시에도 줄지 않고 늘었다.
즉 2024년 정부 R&D 예산은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삭감됐으며 24년도 예산 삭감 폭은 16.6%로 91년도 삭감 폭인 10.5%보다 큰 삭감 폭이다.
그러나 1964년부터 2024년까지의 정부 R&D 예산 추세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통계 기준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7년부터 1998년까지의 R&D 예산은 연구개발의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고 다른 분야의 정부예산과 같은 편성 절차에 따라 재정 담당 부처 등에서 편성됐다. 이에 대해 2023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은 “이 당시는 정부연구개발예산에 대한 집계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최종적으로 편성된 정부연구개발예산 규모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했다”고 했다.
이에 정부는 2000년부터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R&D 예산 편성 방식을 개선했다. 기획재정부의 ‘2000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 편성 방식 개선’ 보도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투자효율성 제고를 위해 각 부처에서 분산·추진 중인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종합조정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우선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통계를 OECD에서 정한 국제 기준에 따라 재정비할 것”이라고 적혀있다.
따라서 1964년부터 1999년까지의 정부 R&D 예산 통계 기준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기준과 차이가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23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분석에서도 R&D 예산 통계에 대해 “1994~1990년 과학기술관계예산, 1991년~1995년 연구개발관계예산, 1996년~1997년 일반·특별 예산을 포함한 정부연구개발예산”이라고 통계 재정비 전에는 R&D 예산을 대변할 수 있는 통계를 사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 19년 만에 3%대로 떨어진 R&D 투자 규모
국회예산처의 연구용역보고서인 ‘R&D 예산 총량 산출 방식의 적정성 및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정부 R&D 예산은 OECD 기준에 따라 ‘연구개발 활동 수행, 연구개발을 위한 장비·시설 구축,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기관 지원 등에 소요되는 예산’으로 정의해 분류된다.
다만 기준의 직접 적용이 곤란한 경우는 실무적으로 국내 여건에 맞게 조정해서 집계한다. 이를 위해 R&D와 비 R&D가 혼재된 사업의 경우 조정계수를 적용해 해당 R&D 예산을 분리·통계 처리한다.
그렇다면 OECD 기준이 도입된 2000년 이후의 R&D 예산 투자 규모는 어떨까.
‘e-나라지표’의 통계를 참고해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부터 2024년까지의 정부 총지출 대비 R&D 예산 투자 규모를 산출해 봤다.
그 결과 2024년도 정부 총지출 대비 R&D 예산은 3.94%로 투자 규모가 3% 대로 떨어진 것은 2005년 이후 처음이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R&D 예산은 정부 총지출 대비 4%대 이상이었다.
이종필 교수 말대로 최근 10년간 정부 R&D 예산 투자 규모의 최저 비율은 2019년 4.4%였으며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은 4.9%가 유지됐다.
한편 정부는 3월 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올해부터 5년간 170조원의 R&D 예산을 투자하겠다는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약'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 R&D 예산은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투자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6월 28일 윤 대통령의 R&D 카르텔 언급 이후 2달 만에 나온 R&D 예산 투자규모는 3.94%였다. 정부 총지출 대비 R&D 예산이 3% 대로 떨어진 것은 19년 만이다.
[검증결과]
통계 자료가 존재하는 1964년부터 2024년까지의 정부 R&D 예산 증감 추세를 살펴본 결과 60년 동안 R&D 예산이 삭감된 건 1991년과 2024년 2번이다. 그러나 OECD 기준을 따르는 현재 R&D 예산 통계 방식은 2000년에 도입돼, 1964~2024년까지 R&D 예산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부 총지출 개념이 도입된 2005년부터 2024년까지의 정부 총지출 대비 R&D 예산 투자 규모를 산출한 결과, R&D 예산 투자 규모가 3% 대로 떨어진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이다. 따라서 “정부 총지출 대비 R&D 투자 규모가 4% 밑으로 내려간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한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 대학 교수의 말은 사실로 판정한다.
* 이 기사는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