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대책]상장 진입문턱 낮아진다…투자자 보호 문제없나

정부, 코스닥활성화 대책 발표
적자기업·자본잠식 기업도 상장…'성장성 중심'
'질'보다 '양'성장…기관외면·투자자 피해 우려
  • 등록 2018-01-11 오후 4:24:04

    수정 2018-01-11 오후 4:24:04

[이데일리 유재희 기자] 한 달 넘게 끌어온 코스닥 활성화 대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11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코스닥시장 활성화의 주요 골자는 △세제혜택·지수개발 등을 통한 기관투자자 참여유인 강화 △상장 요건 대폭 완화 △코스닥시장 자율성 강화 등이다. 정부가 코스닥시장의 모험자본 공급 중개 역할에 무게 중심을 두면서 투자자 보호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 문턱 낮춘다…모험자본 공급 중개 역할 강화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은 것은 코스닥시장이 기술주·벤처 등 혁신 기업들의 자본 조달 시장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코스닥 시장은 미국 나스닥시장을 벤치마킹하며 지난 1997년 출범했지만 모험자본을 공급 중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덩치 작은 기업들이 모인 정체성 없는 시장, 코스피 2부 리그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상장 후 기업들의 성장이 크게 이뤄지지 않고, 투자자 기반이 90% 이상 개인 중심이다 보니 시장의 신뢰성도 낮은 상황이다.

정부는 우선 코스닥 시장의 문호를 확대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계속사업이익과 자본잠식 관련 상장 요건을 폐지하고 수익성 요건도 대폭 완화했다. 이와 함께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이른바 ‘테슬라 요건 상장’의 풋백옵션(공모주 환매청구권)도 완화키로 했다. 이에 따라 잠재적 상장대상이 종전 4454개사에서 7246개사로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기존 상장 요건 틀에 맞추기 어려웠던 혁신기업에도 기회가 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무요건보다는 기업의 성장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한국의 경제성장동력이 코스닥 기업에서 나오게 될 것이란 점에서 정책 방향이 맞다”고 평가했다. 최종경 BNK투자증권 연구원도 “혁신기업들이 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현재 상장요건을 맞추기는 어려웠다”며 “4차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규제의 틀을 개선한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 육성만 있고 개인 투자자 보호는 없어”

이번 대책 발표 후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투자자 보호 측면이다. 상장 규제 완화가 자칫 묻지마 투자나 제2의 벤처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질적 개선이 중요한데 정부가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무요건 완화가 오히려 기관투자자들의 외면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센터장은 “닷컴 붐이 있던 시기에는 기관들도 기대감으로 투자했지만 기업의 부실이 드러나면서 시장 급락으로 이어졌다”며 “이러한 학습효과가 지금까지 기관들이 코스닥 투자를 주저하게 한 주요 원인”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상장요건을 완화해 문턱을 낮추는 방안은 4∼5년 후 코스닥시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녹색 성장이나 창조경제 등으로 적자기업이 들어왔지만, 상장폐지 수순을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정훈석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이번 정책은 코스닥 활성화보다 벤처기업 육성 방안”이라며 “상장 기준 완화나 테슬라 요건의 풋백옵션 부담 면제 등 방안은 벤처 상장 기업이 늘어나는 효과는 있지만, 기업 리스크를 투자자가 고스란히 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정부는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제도를 강화해 부실기업을 조기에 퇴출하고, 최대주주나 상장주선인이 공모가 대비 낮은 가격으로 취득한 지분에 대해 지분 매각을 제한하는 보호예수의무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대책에 포함했다. 하지만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 실질심사 대상은 다 들어오고 나서 엉망이 된 다음에 쫓아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인데 그 피해는 결국 개인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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