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김형욱 기자] 4일 정부·삼성이 세계 최초로 8.6세대 정보기술(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에 나서며 4조1000억원 규모의 투자 보따리를 풀기로 한 건 윤석열 정부의 이른바 ‘민간 이니셔티브’로의 경제 패러다임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삼성이 끌고 정부가 미는 팀대한민국의 ‘팀플레이’를 통해 과거 디스플레이 왕좌에서 물러난 일본 기업들의 전철을 피하고 더 나아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우리를 바짝 쫓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추격까지 뿌리쳐 이른바 ‘K디스플레이’의 초격차를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방문 감사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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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 이어 OLED까지…中의 거센 추격이번 삼성의 대규모 투자 배경에는 주도권이 수시로 바뀌는 디스플레이 업계 특성상 쫓고 쫓기는 한·중·일 ‘디스플레이 삼국지’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과거 디스플레이 최강자는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1990년대 말 차세대 분야인 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투자를 머뭇거릴 때 그 틈을 삼성이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파고들었고, 그 결과 한국은 2004년 일본을 넘고 글로벌 LCD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우리는 2020년까지 17년간 단 한 번도 왕좌의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중국이 그 자리를 넘보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2021년 LCD 시장 점유율 41.5%를 차지하며 1위 자리를 가져갔고 OLED 분야에서까지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총 투자비의 10% 자금만 보유하고 있어도 공장을 건설할 수 있을 만큼 정부의 뒷배 속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중국 간 기술 격차도 점차 줄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다행히 삼성·LG 등 K디스플레이는 OLED 분야에 집중, 아직까진 이 분야 시장 점유율 71%로 압도적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자칫 과거 일본의 전철을 밟아 실기를 거듭한다면 OLED까지 중국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실제 일본은 뒤늦게 소니·파나소닉·재팬디스플레이(JDI) 등 내로라하는 업체들을 내세워 OLED 전문기업 JOLED를 설립, 뒤집기를 노렸으나 결국 좌절하고 말았다. JOLED는 삼성·LG가 유기물을 증착해 OLED 패널을 제조하는 방식과 달리 잉크젯 프린팅 방식을 시도했는데, 기술 완성도와 품질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적자난에 시달렸고, 끝내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디스플레이 업계가 기술 및 경영전략에서 모두 실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열린 신규투자 협약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문성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협력업체 대표, 이 회장, 윤 대통령, 김태흠 충남지사, 박경귀 아산시장.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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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양강구도 속…초격차 유지 초강수이처럼 디스플레이 산업 자체가 워낙 주도권을 쥐기 어려운 분야인 만큼, 선제 투자야말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며 확실하게 ‘초격차’를 유지할 방안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삼성의 이번 투자를 두고 “한·중 간 양강 경쟁구도 속에 선제 투자를 통해 시장 지배력을 지키기 위한 초강수”란 분석이 나온 배경이다.
그간 삼성은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로 사업의 승기를 잡아온 경험이 적잖다. 2003년 8월 40인치 대형 LCD TV 시장이 열릴 것으로 확신, 경쟁사와 달리 6세대를 건너뛰고 바로 7세대 LCD 투자를 결정한 건 2005년 샤프, 2008년 LG를 차례로 꺾고 글로벌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바탕이 됐다. 또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투자비를 들여 6세대 플렉시블 OLED 라인 ‘A3’을 구축한 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생산량을 큰 폭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이는 곧 스마트폰의 기준을 LCD에서 ‘OLED’로 바꿔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제 삼성은 이번 투자를 통해 LCD가 장악하고 있는 태블릿·노트북 시장의 중심 기술을 OLED로 빠르게 전환시켜 한국이 주도권을 쥔 OLED 기술로 중국으로 넘어간 전체 디스플레이 시장 1위 자리를 2027년 탈환한다는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신규라인이 완성되는 2026년이면 IT용 OLED를 연간 1000만대 정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IT용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20% 수준으로, 현재 대비 5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OLED 생산기술 혁신·응용제품 개발에 4200억원 규모의 R&D를 추진하는 한편, 기업의 적기 투자를 위해 인센티브를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산업 수요 맞춤형 인재를 공급하고자 계약학과 및 현장 중심 아카데미 운영 등을 통해 9000명의 선도인력을 양성하기로 했다.
|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사진=삼성디스플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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