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국내 배터리(이차전지) 업체들이 지난해 연구·개발(R&D) 비용을 큰 폭으로 늘린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등 저가 배터리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R&D를 통해 제품을 다각화하는 동시에 차세대 배터리 시장까지 선점하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 지난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서 참관객들이 삼성SDI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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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SDI(006400)는 지난해 R&D 비용으로 전년 대비 22.7% 늘어난 1조764억원을 투자했다. 삼성SDI의 연간 R&D 비용이 1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삼성SDI는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중 가장 많은 자금을 R&D 역량 강화에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삼성SDI는 배터리 사업 외 전자재료 사업도 벌이고 있어 다른 배터리 업체들보다 R&D 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주요 연구실적 7개 중 전기차용 고용량·고에너지밀도 전지 개발, 전력용 고에너지 ESS 모듈 개발 등 4개가 배터리와 관련이 있는 만큼 전체 R&D 비용 중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지난해 R&D 비용으로 8761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2021년 6540억원보다 34% 늘어난 금액이다. SK온은 지난해 3분기까지 1703억원을 R&D 비용으로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R&D 비용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삼성SDI가 5.4%로 가장 높았고 SK온(3.59%)과 LG에너지솔루션(3.4%)이 그 뒤를 이었다.
국내 배터리 3사가 앞다퉈 역대급 R&D 비용을 투입한 데는 기술 경쟁력을 높여 중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을 따라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윤호 삼성SDI 사장은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초격차 기술 경쟁력, 최고의 품질,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이란 경영 방침 속 임직원 모두 하나 돼 글로벌 톱티어(Top Tier) 회사 달성을 앞당길 수 있도록 힘찬 발걸음을 내딛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열린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에선 이들의 R&D 결과를 엿볼 수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LFP 배터리 시장에 대응해 에너지저장장치(ESS)용 LFP 배터리를 공개했고 SK온은 처음으로 각형 배터리 실물 모형을 전시해 제품을 다각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이 자리에선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 현황도 공개됐다. 전고체 배터리 모형을 전시한 삼성SDI는 경기도 수원시에 짓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올해 상반기 내 완공하고 오는 2027년 이를 양산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2026년 고분자계, 2030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각각 상용화한다는 게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당장 저가형 배터리를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우위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제품을 다각화하고 배터리 효율을 높이는 등 초격차를 만들어낸다면 다시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R&D 비용 증가는 앞으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