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 사는 정이연(60)씨는 어버이날을 맞아 친정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찾았으나 어머니와 얼굴을 직접 마주하진 못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면회가 금지된 탓이다. 정씨는 병실 창문을 통해 겨우 어머니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눴지만, 어머니가 떠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자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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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의 여파가 부모를 찾는 자식들의 발걸음에도 영향을 끼쳤다. 면역이 약한 고령자와 지병환자가 감염될 수 있다는 우려에 정부가 전국 요양원·요양병원의 외부인 출입과 면회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부모님을 뵈러 왔다가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자식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8일 이데일리가 찾은 서울 시내 요양원·요양병원 대다수는 가족을 비롯한 외부인 면회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면회가 금지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자식들 일부는 요양시설을 찾았다. 직접 찾아 뵙지 못하는 마음을 카네이션 꽃바구니, 요양하고 있는 부모가 좋아하는 음식 등으로 전달하고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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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관계자들은 들어오는 물품을 소독해 내부로 들여보냈다. 오후가 되자 시설 내부로 전달해야 할 물품이 증가해 분주해졌지만, 관계자들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이해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병원에 계신 분들에게 일일이 꽃을 달아 드리고 사진을 찍어 자식들에게 보내드리고 있다”며 “환자가 많아 내일까지 작업해야 할 것 같지만, 저도 자식 된 처지에서 자식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해하며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양시설을 찾은 일부 가족들은 면회가 금지되자 병원 측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서울 관악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만난 A씨는 “아버지의 몸 상태를 직접 보고자 왔는데, 면회는커녕 중환자실에 계셔서 화상 통화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며 “아버지 모습을 확인도 못 하고, 주치의한테 상태만 듣고 가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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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요양시설에선 이른바 ‘비접촉 면회’를 하는 이색적인 모습도 관찰됐다. 병원 측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보면서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면회를 준비한 것이다. 10분으로 제한된 시간이었지만, 면회에 나선 이들은 모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유리에 손을 맞대고 얼굴을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같은 시간 어머니와 면회를 하던 A(54)씨도 눈물을 흘렸다. 94세인 A씨의 어머니 역시 면회 내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영상 통화를 일주일에 한 번씩은 했는데,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4개월 만에 처음”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바깥 구경을 하면서 바람도 쐬고, 산책하면서 엄마랑 안고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인 면회를 엄격하게 제한한 시설 대다수와는 달리 일부 시설에선 면회를 허용해 감염이 우려되기도 했다. 한 요양병원에선 병원 내 장소에서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짧은 면회 시간을 허용했고, 또 다른 요양병원에선 자식들이 방호복을 입은 채 부모님을 직접 만날 수 있게 했다.
한편 정부는 요양시설에 적용할 새로운 면회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어버이날인데도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들이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코로나19가 좀 더 안정화되면 어르신들에 대한 감염예방을 철저히 하면서 면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