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레깅스 입은 여성 몰래 촬영한 男에…"성범죄 맞다"

버스에서 8초 간 여성 엉덩이 부분 몰래 촬영
1심 유죄→2심 무죄→대법 유죄
'성적 수치심' 적용 두고 판결 엇갈려
대법 "장소·상황·방식 따라 성적 수치심 유발 여부 달라"
  • 등록 2021-01-06 오후 3:04:28

    수정 2021-01-06 오후 3:04:28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버스에서 레깅스(신축성이 좋고 보온성이 뛰어난 타이츠 모양의 바지)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로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남성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사진=이데일리DB)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 2018년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레깅스 바지를 입은 피해자의 엉덩이 부위 등 하반신을 약 8초 동안 피해자 몰래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A씨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카메라의 방향이 자신에게 향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A씨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면서 A씨의 범행이 드러났다.

당시 피해자는 엉덩이 바로 위까지 내려오는 다소 헐렁한 운동복 상의를 입고 있었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레깅스 하의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피해자는 버스에서 하차하기 위해 뒤쪽 출입문 옆에 서 있었고, A씨는 출입문의 맞은편 좌석에서 피해자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피해자의 얼굴도 예쁘고 전반적인 몸매가 예뻐 보여 촬영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피해자는 “기분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심은 A씨에 대해 유죄로 판단, 벌금 70만 원을 선고하고 성폭력치료프로그램 24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2심은 A씨가 촬영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등을 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이 사건 동영상은 A씨가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서 있는 피해자를 뒤에서 몰래 촬영한 것이기는 하나, 특별한 각도나 특수한 방법이 아닌 사람의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치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했다”며 “외부로 직접 노출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목 윗부분과 손, 그리고 레깅스 끝단과 운동화 사이의 발목이 전부라 수치심을 유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다. 대법원은 A씨가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대상이 되는 신체가 반드시 노출된 부분으로 한정된 것은 아니다”며 “의복이 몸에 밀착해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 굴곡이 드러난 경우에도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같은 신체 부분이라도 어떤 장소·상황·방식으로 촬영됐느냐에 따라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하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를 고려하면 피해자와 같은 성별·연령대 일반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도 A씨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촬영한 상황에 해당하는 것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거나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의사로 드러낸 신체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함부로 촬영 당하는 맥락에서는 성적 수치심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기분이 더럽다’ 등의 피해자 진술은 피해자의 성적 모멸감과 인격적 존재로서의 분노 등의 표현으로 성적 수치심이 유발됐다는 의미로 충분히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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