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통상조직 개편, 정책수요자 목소리를 들어라

산업부-외교부, 과도한 '통상 쟁탈전' 뭇매
"통상조직 개편, 정책 수요자 관점서 봐야"
기업 87% "통상기능은 산업부에 존치해야"
  • 등록 2022-04-11 오후 4:03:55

    수정 2022-04-12 오전 9:53:01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정부조직 개편 논의는 새 정부 출범 후로 미뤄졌지만,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들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위원들과 접촉해 서로 자신의 조직이 통상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며 치열한 물밑 작업을 벌이느라 분주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


통상 조직과 기능은 김영삼 정부에서 산업부로,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부로,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산업부로 옮겨진 뒤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9년 만에 통상을 되찾으려는 외교부는 “국제통상 질서가 외교·안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고, 경제안보가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가 됐다”며, 통상기능의 외교부 환원 필요성을 주장한다.

경제안보 중요성의 대두, 통상의 가치 중심화(환경, 노동, 인권, 민주주의) 등 최근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상은 경제를 넘어 정치·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과거에는 효율성에 기초한 관행으로 통상 정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변했고, 통상과 경제, 안보, 외교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며,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탰다.

이에 맞서 산업부는 “산업 정책과 일체화된 통상 전략으로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반박한다. 다자무역질서의 쇠퇴,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급변하는 통상 환경에 대응하려면 실물 경제 부처 중심으로 통상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논리다. 격앙된 감정 표출, 과도한 여론전 등으로 ‘통상 쟁탈전’이 위험 수위에 이르자, 인수위는 “공개발언을 삼가라”며 경고했다.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부처간 ‘밥그릇 싸움’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정작 정책의 수요자인 기업들의 목소리는 뒷전이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갈등, 일본의 수출 규제 등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산업계는 통상 문제를 생존과 직결한 문제로 여길 만큼 절실하다. 또 다양한 경험을 통해 통상기능이 실효성 있게 작동하려면 정부와 업계의 긴밀한 소통, 정부의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외교부가 통상교섭을 하면 산업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기업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부처가 통상 업무를 맡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B경제단체의 고위관계자는 “미국 등 주요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에너지 등 실물경제 전반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하는데, 통상만 따로 분리해서 볼 수 있는 것이냐”면서 “정치 논리에 사로잡혀 우리 기업들의 경제적 이익이 희생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

한국산업연합포럼(KIAF)가 최근 진행한 ‘통상기능 담당 부처관련 긴급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7%가 “통상기능은 산업부에 존치해야 한다”고 답했다.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해 대사관 등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기업들은 대체로 산업부에 더 우호적이었다. 조사를 진행한 KIAF의 정만기 회장은 “통상기능의 소관부처 결정은 부처간 힘겨루기가 돼선 안 된다”며 “통상의 이해관계자인 기업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정부 조직 개편은 철저하게 정책 수요자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통상 기능을 통째로 떼어내 외교부에 붙이는 것이 과연 국민과 기업을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통상 기능의 산업부 존치 또는 외교부 이관 등 어떤 결정을 내리던지 수요자인 기업, 국민의 편익과 국익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통상조직 개편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할 건 부처들의 아전인수 논리가 아니라, 급변하는 통상환경에서 세계 각국과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는 기업들의 간절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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