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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일본 도시바 반도체(도시바메모리) 인수전이 꼬일대로 꼬이고 있다. 시간에 쫓기는 도시바는 우선협상대상자인 한미일연합과의 본계약 협상 난항 끝에 인수 의지를 내비친 세 곳과 동시에 협상을 시작했다. 인수 의지와 함께 다른 곳으로의 매각을 막고 있는 웨스턴디지털과의 법정 공방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도시바의 히라타 마사요시(平田政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11일 저녁 주요 채권은행 대상 반도체 부문 매각 현황 설명회에서 미국 반도체 회사 웨스턴디지털, 타이완 훙하이(鴻海)정밀공업(폭스콘)과도 협상을 재개했다고 밝혔다고 일본경제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 지난달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SK하이닉스(000660) 포함 한미일연합과의 매각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유에서다.
히라타 마사요시는 참가 은행 관계자에게 “지난달 2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한미일연합과의 매각 교섭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에 포함된 일본 정부계 자본의 산업혁신기구와 일본정책투자은행, 미국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 등 참가 주체와의 협상이 난항이라는 설명이다. 계획대로라면 지난달 28일 본계약을 맺었어야 했다. 도시바는 매각 협상이 난항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그러나 도시바메모리와 동종기업인 SK하이닉스의 참여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시간에 쫓기는 도시바가 웨스턴디지털과 훙하이 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동종업계인 건 마찬가지이지만 미 헤지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연합해 최소한 SK하이닉스와 비슷한 포지션이 됐다. 더욱이 지분 협력 관계인 웨스턴디지털에 매각하면 현재 진행중인 법정 공방도 피해갈 수 있다. 훙하이는 중국계 자본에 대한 일본 반도체 기술 유출을 우려한 일본 정부의 뜻에 애초부터 매각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았으나 똑같은 조건의 SK하이닉스에 매각기로 한 마당에 훙하이 역시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도시바는 2016년 회계연도(2016년 4월~2017년 3월) 채무초과에 빠졌고 이번 매각을 서두르지 않으면 2018년 3월말에 끝나는 2017년 회계연도에도 채무초과가 불가피하다. 2기 연속 채무초과 상태가 된다면 도시바의 회생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도시바는 이미 올 8월 증시 2부 강등이 확정된 데다 지방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도 채무 연장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금난이 가중되면 회생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이번 인수전의 또 다른 핵심 변수, 웨스턴디지털과의 법정 공방도 본격화했다. 더욱이 미국 법원이 ‘첫 판’부터 자국 기업인 웨스턴디지털의 손을 들어주며 도시바는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됐다.
도시바는 이 가운데 지난해 말 자금난에 빠져 요카이치 공장을 포함한 반도체 부문을 매각기로 했으나 웨스턴디지털은 직접 인수 의지를 내비치는 동시에 협력 관계인 본인의 승인 없는 매각은 불법이라며 올 5월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에 중재 신청을 냈다. 또 미 법원에 매각절차 중단 및 정보 접근권 확보라는 두 가지 부문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직접적인 매각 중단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웨스턴디지털에 정보 접근권을 부여함으로써 양측의 관계 형성을 인정한 셈이다. 도시바는 샌디스크랑 계약했지 웨스턴디지털과 직접 계약한 게 아니라는 논리로 대항해 왔다. 일본 법원에는 오히려 웨스턴디지털에 대해 매각 방해 중단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웨스턴디지털은 자연스레 이번 결과를 반겼다. 웨스턴디지털은 판결 직후 “우리의 위치를 입증하는 이번 결정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도시바는 이와 대조적으로 “이번 판결은 앞으로 이어질 법정 공방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며 “결과를 보여주는 판결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도시바는 항소할 예정이다. 법원은 이와 관련해 오는 28일 추가 심리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