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가 동반자로` 손잡은 한미 원전기업들…주도권 놓곤 샅바싸움

한전· 한수원· 美 웨스팅하우스 등 3개사
"해외 원전시장 공동진출 협력" 큰 틀 합의
세부 항목 이견…'공동 선언문' 서명 취소
  • 등록 2022-06-09 오후 5:37:31

    수정 2022-06-09 오후 5:37:31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한국전력(015760)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8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방한 중인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WEC)의 사장단과 만나 해외 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왼쪽 앞에서 두번째)이 패트릭 프래그먼 WEC 사장(오른쪽 두번째)과 해외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협력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사진=한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미 원전동맹’ 선언 후 두 나라를 대표하는 원전 기업들이 실질적인 협력의 신호탄을 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다만 향후 원전 수주에 있어 주도권을 쥐려는 양측의 샅바싸움으로 세부 항목에 대한 의견 조율에 실패하고, 큰 틀에서 원론적인 수준의 합의만 도출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미 원전 대표 기업 ‘실질적 협력’ 물꼬

9일 한전에 따르면 정승일 한전 사장과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패트릭 프래그먼 웨스팅하우스 사장과 각각 면담을 갖고 해외원전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 달 21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신형 원자로 및 소형모듈원전(SMR)의 개발과 수출 증진을 위해 양국 원전 산업계가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며 한미 원전동맹을 선언한 데 따른 후속 작업의 성격이 짙다.

1886년 설립된 웨스팅하우스는 전 세계 절반 이상의 원자력발전소에 원자로·엔지니어링 원천기술을 제공한 글로벌 원전 기업이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원전을 건설한 업체이며, 우리나라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 역시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을 전수받아 지었다. 이날 면담은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원전 기업들간 실질적인 협력 논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인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프래그먼 사장과의 면담에서 “해외 대형 원전시장에 공동 진출하기 위한 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그 외 다양한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한국의 우수한 사업 관리 능력과 기술력, 공급망과 웨스팅하우스가 보유한 강점이 결합한다면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과 한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면담을 통해 웨스팅하우스와 포괄적인 협력 의지와 기본 원칙을 확인하는 등 실질적인 원전 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한전과 한수원은 향후 웨스팅하우스와 공동 워킹그룹이나 위원회를 구성해 해외 원전사업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또한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고 국내 원전산업 생태계를 회복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웨스팅하우스와의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방침이다.

‘공동 선언문’ 돌연 취소…“실리 찾는 과정”

하지만 양국 원전기업간의 협상이 순탄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한전은 면담이 끝난 뒤 ‘해외 원전시장협력 공동선언문’에 서명하려 했으나, 돌연 취소됐다. 양측 모두 ‘해외 원전 수주에 협력하겠다’는 큰 틀에는 합의를 이뤘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이견 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과 한수원은 공동선언문 발표가 취소된 배경에 대해 함구했지만, “양측 모두 실리를 찾는 과정에서 다소 견해 차이가 있었다”고 언급했다.

양국 정상의 ‘원전동맹’ 선언으로 이제는 조력자가 됐지만, 사실 한전·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신규 원전 사업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두코바니, 폴란드 루비아토프-코팔리노 등의 신규 원전 수주를 놓고 프랑스전력공사(EDF)와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본인들이 사업 수주 후 한국에 시공, 부품 납품 등 후방산업을 맡기는 형태의 공동 수출 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원전인 ‘APR1400’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웨스팅하우스가 지식재산권(IP) 문제를 제기하며 기싸움을 펼쳤을 가능성도 있다.

공동 수출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양측의 샅바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한국과 미국 모두 원전 수출의 주도권을 쥐려 하는 상황에서 양측 모두를 만족하는 협상안 도출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실리와 명분을 찾으려는 양측의 협상 심리전이 체코, 폴란드 등 신규 원전 사업자 결정이 임박하는 시점까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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