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아프간 '특별기여자'는 '난민'이 아닌가

아프간인 378명 입국 “난민 신분 아닌 특별기여자”
난민이슈 뜨거운 화두…찬성 27% 반대 31% 팽팽
靑, 난민수용에 “복잡하고 신중한 문제” 선긋기
여야 전략적 침묵 속 정의당 난민수용 제기했다 뭇매
“이슬람 극단주의자 난민 지위 악용 가능성 낮아”
  • 등록 2021-08-26 오후 8:18:26

    수정 2021-08-28 오전 10:26:56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협력자와 그 가족들이 26일 오후 우리 공군 다목적 공중급유 수송기를 이용해 인천공항을 도착, 코로나19 PCR 검사를 마친 뒤 입국장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경기도 김포의 한 호텔로 이동해 검사 결과를 기다릴 예정이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정다슬 김정현 기자] “한국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피란민 대피에 필요한 공수 지원을 해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행크 테일러 미 합참 소장은 25일(현지시간) 국방부 브리핑에서 “한국이 아프간 난민을 한국으로 운송하기 위해 공군병력을 운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이같이 밝혔다. 이 브리핑에서 사용한 아프간인을 지칭하는 단어는 ‘refugees’, 즉 난민이었다. 이는 대한민국도 이제 난민 이슈를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다만 정부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대응은 여전하다.

아프간인 ‘특별기여자’ 장기체류 허용

26일 아프간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378명(13명은 후발대로 한국에 올 예정)에 대해 우리 정부는 ‘난민’이 아닌 ‘특별기여자’ 신분으로 들어오는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앞서 미국 국방부 브리핑이 보여주듯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으로부터의 박해 위험에 처해있는 아프간인들을 보는 시선은 난민이다. 우리처럼 자국민들과 함께 일한 아프간인들을 자국으로 수송하는 미국,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다른 나라도 이들을 ‘난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특별기여자라는 호칭은 이들이 비(非)난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짧게는 1~2년, 길게는 7~8년 아프간에서 한국정부, 코이카(KOICA) 등과 함께 아프간 재건에 함께 노력했던 ‘조력자’라는 점을 강조해 이번 구출이 단순히 인도적 차원이 아닌 동료에 대한 의리이자 도리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보여주는 것은 이번 구출작전이 ‘난민 수용’에 대한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하는 고도의 정무감각이다. 이번 아프간 391명 입국에 한국 입국에 맞춰 법무부는 특별기여자 지위로 장기체류가 가능하도록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기로 했다. 현행법에서는 특별기여자에 맞는 체류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없는 법’까지 만들며 이번 입국이 난민 아닌 조력자들을 받아들이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아프간 난민에 대한 찬반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알앤써치가 지난 23∼26일 MBN·매일경제 의뢰로 실시한 국제사회의 아프간 난민수용에 대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2.9%포인트)에 따르면 찬성 27%, 반대 31%로 각각 나타났다. 다만 ‘한국 정부와 관련됐거나 전문직 위주 선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은 30%로 나타났다.

정부, 여론 의식 눈치보기… 대선 앞둔 여야도 신중론

난민 이슈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당시 찬반 갈등으로 국론분열적 양상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여론의 바로미터’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도 아프간인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난민을 받지 말아주세요’라는 청원 동의자가 무려 2만여명을 넘어섰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아프간인들이 국내에 영구 정착할 경우 범죄나 테러 가능성까지 우려할 정도다. 특히 아프간 난민 수용으로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 난민들이 한국으로 쏟아져들어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만큼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의 조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반발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지나친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 정치권 역시 차기 대선 과정에서 난민 이슈의 폭발력을 고려해 지나친 신중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아프간 특별기여자의 수송작전 ‘성공’에는 고무된 듯하지만, 추가 난민 수용 등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만큼 예민한 이슈라는 판단이다. 지난 23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아프간 난민 수용은) 국민적 수용성을 고려해 종합 판단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하고 신중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에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프간인 추가 수용과 난민 인정 등 사안에 대해서는 “법무부의 문제”라고 일관하고 있다. 정부는 추가적인 구출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소통수석은 “현실적으로 (추가 탈출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여야 정치권 역시 말을 아끼고 있다. 이낙연·이재명 등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원론적’ 환영 의사를 표했다. 다만 이들 주자가 게재한 글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 일단 아프간인들의 난민 인정 등에 대한 입장은 전혀 없었다. 대신 당분간 아프간 기여자들의 거주지가 될 충북 진천의 주민들에 사의를 표했다. 야권 대선주자들 역시 말을 아끼고 있다. 윤석렬·홍준표·최재형 후보는 이번 아프간인 입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데려온다는 400여명 중에 탈레반과 연계된 자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겠느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직 정의당이 적극 나설 뿐이다. 이정미 전 대표는 “정부는 오늘 입국한 아프간 사람들을 ‘특별기여자’라고 강조하며, 공로가 없는 보통의 난민들과 구분 지었다”며 “보통의 난민에 대해서도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앞서 장혜영 의원도 아프간 난민 수용을 촉구했다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다.

난민 수용률 1% 저조…선진국’으로서 역할·책임 보여야 할 때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가장 처음으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다. 2011년 12월 29일 국회에서‘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난민법)이 통과됐다. 그러나 이것이 난민에 대한 포용력과 이해의 깊이가 넓어졌다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0년 접수된 난민 신청자 수는 6684명이며, 이 기간에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신청자는 69명이었다. 1% 수준의 수용률인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원하는 ‘선진국’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해질 것이란 점이다. 영국 출신의 한국 프리랜서 기자인 라파엘 라시드는 ‘대한민국 청와대’ 공식 트위터 계정이 지난 6월 13일 올린 G7 정상회의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며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대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의 일원이라는 것을 자랑하기 좋아한다”며 “그러나 과거 한국을 도왔던 난민이나 아프간 등 국제적 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비판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제주 예멘 난민 사태 이후 법무부가 여러 중동 전문가를 고용해 난민 심사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며 “국민들이 우려하는 것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난민 지위를 악용할 가능성은 매우 적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제규모가 G10 수준까지 커진 상황에서 난민 대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책무”라며 “정부 역시 인기 없는 정책이라고 쉬쉬할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에 대한 필요성을 설득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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