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김예람씨는 지난 11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소를 찾았지만, 투표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었다. 손이 불편한 김씨가 어머니에게 투표를 도와달라고 했지만, 현장 직원이 이를 저지하면서 혼자 투표를 하다가 손이 미끄러져 사표 처리가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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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등 장애인 단체들은 14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총선 선거지침에 기존 발달장애인의 투표 보조 내용이 삭제됐다”며 “이 때문에 지난 10~11일 진행됐던 사전투표에 참여하고자 했던 많은 발달장애인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 단체에 따르면 이번 선거지침에서 발달장애인과 관련한 투표 보조 내용은 아무런 공지 없이 삭제됐다. 김성연 장추련 사무국장은 “선관위는 사전에 장애인 단체와 어떠한 협의도 없이 이러한 지침을 삭제했다”며 “선관위에 사실 확인을 하자 ‘발달장애인의 투표권을 다른 사람들이 대리하는 상황이 생겨 빼버렸다’고 답변했다”고 말했다.
김준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선거 지침이 바뀌었다면 안내가 있고 대안이 제시돼야 하지만, 선관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발달장애인들은 차별이 있으리라고 예상하지도 못하고 투표장에 갔다가 참정권을 짓밟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총선 당일엔 지침을 변경해 발달장애인들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이와 관련해 인권위에 강력한 시정 권고를 요청했다. 아울러 이들은 △선관위의 책임 있는 사과 △이번 지침 변경 과정의 공개 △장애인 사안 관련 협의체 구성 △장애인 참정권 보장 지침 마련 △선관위 전 직원에 대한 장애인 인권교육 시행 등을 촉구하는 진정서도 함께 인권위에 제출했다.
한편 선관위 측은 해당 지침이 변경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지침이 바뀐 게 아니라 법에 따라 투표 관리 매뉴얼에 있는 ‘지적·자폐성 장애인’이란 표현만 빠진 것”이라며 “장애인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땐 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와 관련해 문의한 장애인 또는 장애인 단체엔 이 같은 내용을 유선으로 설명했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