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고위험·고수익’의 그림자…KKR에 쌓이는 평판 리스크

태영-KKR 주주간 계약 지켜본 PE업계
13% 고금리·지분 50% 담보 등에 경악
악셀그룹 딜 관련 국내 금융사도 냉랭
“해결사냐, 사채업자냐”…평가 엇갈려
  • 등록 2024-12-19 오후 6:17:57

    수정 2024-12-19 오후 6:17:57

[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해결사 혹은 고리대금업자.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국내 시장에서 받는 상반된 평가다. KKR은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지만, 동시에 고금리와 지분 담보라는 조건을 달아 ‘고위험·고수익’ 전략을 추구한다. 최근 KKR이 주도한 딜에 참여한 국내 금융사들이 대규모 손실 위기에 몰리면서, KKR의 평판에 금이 갔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챗GPT를 활용한 이미지]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태영그룹의 폐기물 자회사 에코비트 매각 대금 2조700억원은 지분 50%를 보유한 공동 최대주주 KKR이 독식했다. 나머지 지분 50%를 보유한 태영그룹 지주사 티와이홀딩스(363280)가 대금 수취 권리를 포기하면서다. 태영 측은 “지난해 1월 KKR에서 빌린 4000억원 규모 차입금과 지연이자를 변제해주는 조건으로 전액 KKR에 넘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태영 우군’인 줄 알았던 KKR의 돌변

지난해 태영건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태영그룹은 KKR로부터 사모채 인수 방식으로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KKR은 연 13%의 고금리와 태영 몫의 에코비트 지분 절반을 담보로 잡았다. 만약 티와이홀딩스가 부도 상태가 된다면 담보로 잡고 있는 에코비트 지분 50%를 몰취할 수 있는 조건이다.

당시 태영그룹의 알짜 자회사로 꼽히던 에코비트의 기업가치는 최소 3조원으로 거론됐다. KKR 입장에선 4000억원을 빌려준 대가로 3조원짜리 에코비트를 독식할 수 있는 셈이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당시에도 KKR이 해당 몫인 1조5000억원을 회수하는 게 최종 목표가 아닐 거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고금리에 지분 담보 등은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조건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과거 KKR은 태영그룹의 우군이라 불릴 만큼 여러 딜을 함께 해왔다. 2021년 에코비트 소수지분 투자로 인연을 맺은 KKR은 지난해 1월 사모채 인수를 진행했고, 같은 해 12월엔 태영인더스트리 지분 100%(2400억원), 평택싸이로 지분 37.5%(600억원)도 사주며 자금 지원에 나섰다. 지난 한해 KKR에서 태영그룹에 투입한 금액만 7000억원에 달한다.

급전을 내어주던 KKR은 태영그룹의 위기가 본격화하자 투자금 회수에 나섰다. 에코비트 매각에선 당초 예상하던 3조원 수준의 매각이 불발되자, 태영 몫의 자금까지 챙기며 쏠쏠한 차익을 냈다. KKR은 2021년 이후 에코비트에 총 1조3160억원을 투입했는데, 2020~2022년 3년간 배당으로 약 800억원을 회수했고, 이번 매각으로 2조원 가량을 모두 챙기면서 7000억원이 넘는 차익을 남기게 됐다.

국내에서 비슷한 전략을 취하는 금융사로는 메리츠증권이 있다. 메리츠증권은 유동성 위기에 빠진 롯데건설에 1조5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약 13%의 고금리 조건을 적용했다. 올해 들어서도 폴라리스쉬핑 모회사 폴라E&M에 연 12.5% 금리에 3400억원을, M캐피탈에 연 9%에 2800억원을 내줬다. 자금 확보가 급한 기업들은 고금리 조건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KKR 딜 피하자” 인수금융 발 빼는 금융사들

국내 금융사들 사이에서도 KKR의 평판이 악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금융사들이 KKR이 주도한 악셀그룹 인수 건에 돈을 댔다가 대규모 손실 위기에 몰리면서다. KKR은 지난 2022년 유럽 최대 자전거 제조사 악셀그룹을 2조3000억원에 인수하며 국내 금융사들로부터 1조4000억원의 인수금융을 일으켰다. 하지만 KKR에 인수된 지 6개월만에 악셀그룹의 부실 위기가 드러난 것이다.

해당 딜을 주도한 영국 KKR은 지난 8월 대주단에 기존 대출액 탕감을 요구했고, 최선순위 대주단을 구성하는 ‘레스큐 파이낸싱’까지 제안했다. 국내 대주단은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KKR의 일방적인 채무 탕감 요구와 추가 자금 투입 요구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 했다는 후문이다. 대주단의 반발이 거세지자 영국 KKR은 최근 신한은행 등 국내 대주단을 찾아 악셀그룹 투자 관련 사과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KKR은 1976년 설립된 사모펀드로 총 자산이 5200억달러(약 755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다. 한국계 미국인인 조지프 배(한국 이름 배용범)와 스콧 너클이 공동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9년 OB맥주를 18억달러에 인수한 뒤 5년 만에 58억달러에 AB인베브에 되팔아 4배 수익을 낸 딜로 이름을 알렸는데, 해당 딜을 주도한 게 배 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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