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김형욱 장영은 기자] 한반도 주변 4강(强·미중일러)에 파견된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들이 상대국 정상들과 속속 만남을 갖고 문 대통령의 외교정책 방향을 설명하며 양국 간 공조방안을 확인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사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처음으로 ‘평화’라는 발언을 끌어내는 등 남다른 성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본과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중국과는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평행선을 달리며 불씨를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홍석현 대미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지금은 압박과 제재 단계에 있지만 특정한 조건이 되면 관여(engagement)를 통해 평화를 이룰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북한과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전제를 달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라는 단어를 언급한 건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됐다. 전날(16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핵 실험의 전면중단이 이뤄진다면 (북한과)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측은 사드 비용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민감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홍 특사는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사드 배치 과정에 대한 국내 절차상 논란이 있다”고 했고, 이에 맥마스터 보좌관은 “한국 내에 그런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해한다”고 답했다. 맥마스터 보좌관의 언급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배치를 위한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 움직임을 배려하는 취지로 풀이됐다.
하지만, 중국의 사드 보복과 일본과의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등의 문제는 아직 풀어야 할 과제다. 이해찬 중국특사가 19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을 접견할 예정인 가운데 중국 관영 언론들은 ‘특사가 오더라도 중국이 사드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며 사드 배치 반대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이날 문희상 대일특사에게 “국가 간 합의인 만큼 착실히 이행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혀 위안부 합의 재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했으나 문희상 대북특사는 전날(1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의 만남에서 “현 위안부 합의는 국민 대다수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우리 정부가 재협상 또는 파기 수순으로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다만, 일본 언론은 문 특사가 재협상·파기 등의 직접적인 단어를 쓰지 않은 점을 들어 제3의 길로 해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고 분석했다.
문 특사는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만남에선 ‘셔틀 외교’ 복원을 희망하는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에 아베 총리는 “그렇게 하자”고 흔쾌히 화답했다. 셔틀 외교란 한·일 양국이 서로 번갈아가며 정기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해 정상·실무회담을 여는 것으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셔틀 외교에 합의했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사건으로 1년만에 중단됐다. 한편, 4강 특사단 파견의 마지막 일정으로 송영길 대러특사는 오는 22일 출국한다고 외교부가 이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