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번만 응원의 말을 건넸다면"…경비원 비극에 '눈물의 촛불'

11일 오후 7시 아파트 경비원 추모 촛불집회
"비 오는 날 이중주차 된 차 밀어주고, 아이들 아껴주신 고마운 분"
입주민들 "고인 억울함 반드시 해소할 것"
  • 등록 2020-05-11 오후 9:23:04

    수정 2020-05-11 오후 9:23:04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의전이 형식이 되고 인사라는 것도 짐이 되기 쉬운 세태에 당신은 가장 멀리까지 배웅하고 가장 빨리 인사했습니다.”

11일 오후 7시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는 주차장에 모인 주민들이 촛불을 든 채 묵념을 했다. 지난 10일 숨진 경비원 최모씨를 추모하기 위해 입주민들이 뜻을 모아 촛불 집회를 연 것이다. 당초 추모식을 준비한 입주민은 입주민들을 위한 촛불을 20여개만 준비했지만 백여명이 넘는 입주민들이 모여 금세 동났다. 이들은 서로 모여 “그 좋은 분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는 탄식만 할 뿐 대화를 잇지 못했다.

11일 오후 7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이 숨진 경비원 최모씨를 추모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살아보겠다더니..”…입주민들 눈물의 추모 물결

입주민들은 최씨와의 추억을 나누고 고인에게 바치는 추모시를 낭독했다. 고인의 평소 선한 모습을 묘사한 ‘선물’이라는 제목의 추모시는 “당신이 왔던 풍요로운 웃음의 나라로 가고 계신가요”라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됐다.

시를 지어 낭독한 입주민 황모(47)씨는 “(고인에게) 한 번만 더 응원의 말을 건넸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는 죄책감이 있다”며 “주민들 대부분이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며 슬픔을 내비쳤다.

추도식을 진행한 입주민 송인찬(38)씨는 “(고인이 생전에) 아침 출근마다 비 오는 날이면 ‘옷 젖으면 안된다’며 차 운전석으로 밀어넣고 항상 (이중주차된) 차를 밀어주시곤 했다”며 “아파트 온 주변을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며 저도 평소 꽁초를 버릴 때 주의해야겠다고 반성했다”고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송씨는 “최씨가 정말 좋은 분이어서 이 자리에 많은 분들이 나온 것 같다”며 “최씨의 억울함이 이 자리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추모식이 이어지는 내내 곳곳에서는 입주민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한 주민은 자신의 아이에게 “아저씨가 너 많이 예뻐했었잖아, 인사 한 번 더 드려”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또 다른 입주민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며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고인을 추도하며 ‘석별의 정’을 부르며 추모식을 마쳤다. 추모식이 끝난 뒤에도 많은 입주민들이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촛불을 들고 있었다. 최씨가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갔었다는 입주민 A씨는 “최씨에게 ‘모든 입주민들이 당신 편이다. 최선을 다해 억울함을 해소해주겠다’고 말하니 ‘살아보겠다’고 얘기했었다”며 “그런데 이렇게 떠난 모습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며 한참이나 분향소를 떠나지 못했다.

한 아파트 입주민이 11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1일과 27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주차 문제로 인해 입주민에게 폭행을 당한 경비원 최모씨는 지난 10일 자신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뉴시스)
입주민 “억울함 해소 위해 끝까지 최선 다할 것”

앞서 서울 강북경찰서는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50대 남성 A씨가 지난 10일 오전 2시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11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1일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 이중 주차된 차량을 옮기려고 했다가 입주민 B씨와 시비가 붙었고, 이후 B씨로부터 협박 및 폭행을 당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오후 아파트 입주민들을 만나 진술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식에서 입주민들은 이 사건 가해 입주민에 대한 정당한 조사를 촉구하고 향후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대표발언을 통해 “입주민들은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비통한 심정을 나누고 떠나는 길에 억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며 “향후 고인이 명예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갑질 없는 세상, 착한 사람이 절망에서 쓰러지지 않는 세상을 이 아파트로부터 구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추모식 현장에는 시민단체 안전사회시민연대가 참석해 가해 입주민을 즉각 구속 수사할 것과 법정 최고형 처벌, 경비원고용안정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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