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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초엔 파리올림픽 티켓 확보를 위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종횡무진 누비느라 더 바쁘게 움직였다. 그 때문에 주 무대인인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는 상금랭킹 39위로 데뷔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신지애는 실망도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 자신의 위치로 돌아와 12월에는 프로 통산 65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호주에서 열린 ISPS 한다 호주오픈을 제패하며 새로운 기록을 썼다. 프로 데뷔 이전 아마추어 신분으로도 프로 대회(2005년 KLPGA 투어 SK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기에 통산 66승을 달성했지만, KLPGA 투어 공식 기록 집계에선 아마추어 신분 우승을 제외해 65승이 됐다.
2006년 KLPGA 투어로 데뷔해 19년 동안 숱한 기록과 역사를 써온 신지애가 2025년 새해에도 변함없는 도전을 다짐했다.
신지애는 지난 6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지난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다. 결과를 다 이뤄내지는 못했으나 과정은 내 골프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보람찼다”며 “아직 은퇴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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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가 후배나 동료,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롱런 비결이다. 신지애는 “제 일상을 보면 루틴이 같다. 사는 것도 먹는 것도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며 “그래서 중요한 것이 자신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롱런을 묻는 후배들에게 항상 ‘내가 했으니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즘 선수 중에는 자신의 골프를 잘 아는 선수가 드물다. 연구하고 스스로 파헤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어린 시절에 큰 아픔을 겪었다. 중학교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신지애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시간을 못 돌리는 구나’라는 걸 느꼈다”면서 “이후 지금의 샷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한샷 한샷에 마음을 담으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후배들은 신지애의 길을 걷고 싶어한다. 얼마 전엔 후배 고진영, 윤이나 등이 신지애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놨다. 누구는 떨어진 경기력을 고민했고, 누구는 자신이 처한 위기에 손을 내밀었다. 신지애는 그들의 손을 모두 잡았다.
신지애가 강조한 것은 ‘온오프’다. 전념할 때와 쉴 때의 확실한 구분이다.
그는 “2년 전에 고진영 선수를 만났을 때 ‘골프에선 오프(비시즌)보다 온(시즌)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있다. 온이 됐을 때 완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면 오프가 됐을 때 마음을 놓고 숨을 돌리기 어렵다”며 “온이 됐을 땐 전력으로 달리고 오프가 되면 끊고 내려놓은 뒤 푹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인터뷰 다음날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간다고 했다. 그는 “휴식기에 한국에 오면 공연이나 다른 스포츠 경기 등을 보러 자주 다닌다”면서 “공연을 보면서 무대에 오른 사람들의 열정적인 연기를 보면 그 시간을 위해 노력한 모습이 떠오른다. 자극이 되고 동기부여가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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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애가 써온 기록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에선 KLPGA 투어 통산 최다승(20승·공동 1위), 단일 시즌 최다승(2007시즌 9승), 시즌 메이저 최다승(2007년 3승), 연간 최다승(2007년 10승)을 비롯해 한국 선수 최초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등극, LPGA 투어 상금왕, 한국 선수 프로 최다승(66승·아마추어 자격 프로 우승 포함) 등 골프 역사에 남을 숱한 기록을 써왔다.
신지애는 올해 또 다른 기록과 싸운다. 2024년까지 JLPGA 투어 통산 13억7202만3405엔의 상금을 획득한 그는 59만6977엔을 추가하면 일본 여자 프로골프의 레전드 후도 유리(일본)가 세운 통산 최다 상금 기록(13억7262만382엔)을 깨고 새로운 전설이 된다. 2승을 추가하면 JLPGA 투어 30승을 채워 영구시드를 받고, 일본여자오픈을 제패하면 JLPGA 투어 최초로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아직 오르지 못한 JLPGA 투어 상금왕도 남아 있다.
새로운 목표를 위해 올해도 전력질주를 다짐한 신지애는 작은 바람도 한 가지 덧붙였다. ‘진짜 프로’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부터 ‘공을 잘 치는 선수’가 아니라 ‘진짜 프로’로 기억되고 싶었고, 지난해부터는 조금씩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단순히 좋은 성적을 거둔 것에 대한 축하가 아니라 진심을 담아 응원하고 축하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다른 선수들도 이런 보람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애는 꺼지지 않는 한국 여자 골프의 등불이다. 그의 골프인생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신지애는 자신의 기록을 깨고 새로운 기록을 달성하는 것보다 후배들을 위한 길을 생각했다.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한국 여자골프는 최근 그 자리를 내줬다.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 태국 등 성장에 밀리고 있다.
신지애는 “한국이 정체하는 동안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골프는 크게 성장했다”며 “한국 선수가 계속해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골프선수로 최종 목표”라고 큰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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