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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재범기자]"얼마전 애들과 열심히 살고 있다고 전화통화도 했는데..."
최근 경찰이 보험사기 용의자로 발표한 90년대 인기 댄스그룹 잉크의 멤버 이만복(34)의 소식을 들은 A씨는 착잡한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A씨는 "원래 소방차의 멤버 이상원의 솔로 앨범을 준비하다가, 그룹이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정원관, 이상원 등과 함께 멤버가 될 신인을 찾다가 92년 이태원의 한 나이클럽에서 DJ로 일하던 (이)만복이를 만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A씨는 이만복의 첫 인상에 대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를 어머니로 알고 끔찍히 생각하던 착한 친구였다. 외모는 100% 외국인이었지만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된장냄새 나는 한국인이었다"고 떠올렸다.
외모로 인해 어린 시절 마음 고생을 많이 해 사람을 경계하는 면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춤실력과 리듬감각, 낙천적인 성격이 돋보여 잉크의 멤버로 참여시켰다고 한다.
이만복이 잉크의 멤버로 활동하던 4년여 동안은 나름대로 수입이 괜찮았다. 방송 출연도 잦았고, 특히 당시 가수들의 주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밤무대에서 인기가 높았다.
"90년대 초, 중반에 한 밤업소에서 대략 1800만원 정도의 개런티를 받았는데, 하루에 보통 4~5개 이상의 업소를 뛰니 멤버들의 수입도 괜찮았다. 또한 방송에서는 입담 좋고 뛰어난 춤실력으로 다양한 개인기를 펼치는 이만복의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1집 이후 적지않은 공백기가 있었고, 이후 2집을 내는 과정에서 팀 내에 불협화음이 생겨 서서히 인기가 하락했다. 결국 96년 잉크는 해체했다.
A씨는 "팀 해체 후에도 한동안 이만복을 비롯한 멤버 몇명은 밤무대에서 잉크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방송에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 보니 인기가 여전할리 없고, 결국 밤무대 출연도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이만복은 잉크가 공식적으로 해산되자, 한동안 버라이어티쇼 게스트와 연기자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했다. 혼혈인의 이야기를 그린 정우성, 심은하 주연의 MBC 드라마 '1.5'에 출연해 연기자로 데뷔했고, 각종 퀴즈 프로그램이나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잉크 시절 만큼의 인기를 얻지는 못했고, 그는 차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2003년 MIX라는 혼성 그룹의 리더로 재기를 시도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단명하고 말았다.
A씨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은 듯 했다. 나도 그 무렵 잉크와 헤어져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가끔 연락만 주고 받았는데, 나이트클럽에서 DJ로 활동하기도 하고 다른 여러 사업도 시도했는데 모두 잘 안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특히 99년에는 그를 어릴 적부터 키워준 친부모와 같았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또한 아이가 생기면서 가장으로서 집안을 책임져야 하는 부담감도 안았다.
A씨는 "보도에서 2003년부터 가짜 교통사고로 보험금을 타냈다고 하는데, 아마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때까지가 가장 삶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A씨는 "연예인으로 화려한 인기를 맛보다가 인기가 떨어져 사람들의 싸늘한 무관심을 접하게 되면 정말 견디기 힘들다"며 "더구나 대중들의 트렌드를 맞추지 못하면 댄스그룹은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고 가요계의 냉정한 생리를 말했다.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나쁜 일을 한 것을 미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린 시절 참 힘든 삶을 겪으며 고생했던 그가 이제서야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모처럼 가정의 행복을 누리는가 싶었는데 이런 일이 터져 너무 안타깝다"고 답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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