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과 각자도생..그래도 희망은 있다

  • 등록 2016-07-26 오전 6:30:00

    수정 2016-07-26 오전 6:30:00

영화 ‘부산행’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 사태를 수습 중이다.” 좀비로 인해 세상은 아수라장인데 TV 화면 속 정부 관계자의 말은 공허하다. 심지어 좀비가 된 시민을 ‘과격 시위’ ‘무차별 폭력’으로 표현해 논점을 흐린다. 갇힌 공간에 남아있는 이들 좀비의 공격에서 살아남는 게 급선무일 뿐이다.

영화 ‘부산행’의 흥행 질주가 매섭다. 개봉 첫 주말까지 531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 ‘명량’의 오프닝 관객 기록을 깼다고 하니 천만 관객은 따놓은당상이다. 궁금증은 ‘명량’의 역대 최고 흥행 기록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설지, 아니면 그 기록을 뛰어넘을지에 모아지고 있다.

영화의 성공은 초반부터 촘촘히 이어지는 긴장감과 쉴새 없이 몰아치는 캐릭터의 대결 덕분이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의 회상 장면은 부정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표현해 눈물나는 감동적 결말을 선호하는 요즘 관객의 심리를 겨냥했다. ‘돼지의 왕’ ‘사이비’ 등 사회성 높은 애니메이션을 연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던 연상호 감독은 장편상업영화에서도 재미와 함께 물질만능주의, 학벌지상주의, 사회안전망부재에 대한 비판 등 제법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부산행’의 미덕은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현실의 우리 모습을 담은 사람 이야기라는 데 있다. 열차 안에는 착하고 나쁘고, 이상적이고 현실적이고, 자기를 희생하고 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등 다양한 군상들이 존재한다. 사회의 축소판이자 인생의 압축본과 같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를 위협에 빠뜨리는 한 캐릭터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섬뜩하다. 감염됐을지 모르는 주인공을 쫓아내는 이들의 말과 시선에 동정이나 연민은 없다.

영화가 한창 촬영될 때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다. 방역망이 뚫리는 상황에서 재난 방지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목도했다. 좀비의 공격을 받은 열차 안도 마찬가지다. 밖에 어떤 위협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개미핥기로 폄훼된 펀드매니저인 아버지는 세상 때묻지 않은 딸에게 “지금 같은 때는 너만 생각하면 돼”라고 말한다. 안전하다는 부산까지 가는 길은 결국 각자도생이다.

다행히 붕괴된 시스템에서도 희망을 찾는 이들이 있다. 탈출할 수 없는 공간에서 두 주먹 굳게 쥐고 싸워내는 몇몇은 우리가 꿈꾸는 미래와 닮았다. 연상호 감독은 “대중이 느끼는 불안심리 대부분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공포가 근원이다. ‘부산행’은 그것에 대한 영화다”고 말했다. ‘부산행’은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틀 안에 간혹 직설적 화법으로 간혹 은근한 묘사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사회적 부조리를 넌지시 꺼내놓으면서 앞으로 적어도 천만 관객의 시선을 더 사로잡을 태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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