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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번 대국이 어떤 이벤트였는지 방증하는 현장이다. 우주 삼라만상을 담았다는 바둑판 위에서 흑과 백을 주거니 받거니 했지만, 막상 그 상대가 없다.12일 오후 1시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리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3국 역시 똑같은 장면으로 끝난다.
바둑애호가들은 바둑을 또 다른 별칭 수담(手談)으로 부른다. 수담은 뜻 그대로 두 인간이 마주 앉아 말없이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다. 바둑에서 쓰이는 말 중 응수타진, 기세싸움, 흔들기 등도 인간과 인간이 대화를 나눈다는 게 함축된 용어다. 상대와의 교류가 없다면 바둑이 아니라는 말일 수 있다. 2국의 장면처럼 벽을 대고 바둑을 둔 셈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말을 걸어왔는지, 상대방이 어떻게 나를 흔드는지 디지털 영역에는 아예 없다. 이세돌 9단이 응수타진을 해도, 흔들기를 해도 소용없다. 뒷맛을 남기면서도 모호함 속에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둑의 묘미다. 알파고는 그저 순간마다 바둑판 위에 놓인 흑과 백을 토대로 다수가 선택한 수를 바둑판 위에 감정 없이 놓을 뿐이다. 알파고의 바둑을 인간이 두는 바둑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바둑을 도전한다고 할 때 몇 가지 궁금증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불계의 규칙에 대한 것이었다. 형세가 크게 불리하거나 역전의 승부처가 없을 때는 끝까지 가지 않고 도중에 기권할 수 있다. ‘불계패(不計敗)’는 부끄러움이 아닌 예의 차원에서 높이 평가되는 관행이다. 알파고는 불계패를 알지 못한다. 불계패를 선언한다 하더라도 아마 모니터를 통해 알파고 대신 바둑을 두는 이의 선택 정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교류가 없고, 우주삼라만상을 탐구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그게 과연 바둑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바둑을 둔다’는 말에는 바둑판 위에서 우주의 원리를 서로 탐구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처럼 알파고가 인간 바둑고수를 1대 1로 붙어 모두 이긴다 해도 그건 바둑으로서의 정당한 승리가 아니다. 그저 수천만 번의 연산으로 얻어낸 다수의 선택이 승리했을 뿐이다.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는 바둑을 앞으로도 정복할 수 없고, 피상적으로 바둑에서 이기는 확률적 통계치 계산에 성공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구글이 불공정한 판을 벌여놓은 게 아닐까 되짚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