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알파고 대결.. "감정과 감정의 만남 대체불가능..바둑의 미래"

  • 등록 2016-03-09 오전 11:05:34

    수정 2016-03-09 오후 12:16:45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왼쪽부터), 이세돌 9단,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이 8일 종로구 포시즌호텔에서 열린 ‘이세돌-알파고’ 대국 미디어 간담회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구글코리아 제공.
[이데일리 스타in 고규대 기자] 바둑은 스포츠다. 이른바 ‘두뇌 스포츠’다. 이두박근이나 복근 같은 근육보다 현대과학조차 알아채지 못할 뇌를 자극한다.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대결을 벌이면서 바둑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졌다. 20년 전 IBM 인공지능 딥블루에 패한 체스의 불운한 운명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세기의 대결’로 포장된 이번 이벤트의 승패를 떠나 ‘바둑이 인공지능에 완패하는 날이 곧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두뇌 스포츠인 바둑은 뇌 세포의 활성화와 판단력, 지구력 등을 극대화한다. 여기서 멈췄다면 중국 요순시대로부터 내려온 바둑은 이미 종말을 고했을지 모른다. 바로 영혼과 영혼의 교류에 바둑의 숨겨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바둑의 또 다른 별칭은 수담(手談), 좌은(坐隱), 난가(爛柯) 등이다. 수담은 뜻 그대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말없이 손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다. 좌은은 바둑 앞에 앉으면서 은둔의 경지에 몰입할 수 있다는 뜻이고, 난가는 바둑에 심취해 옆에 세워놓았던 도낏자루가 썩는 줄도 모르고 구경만 했다는 뜻을 내포한다.

바둑의 미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인공지능이 통계적인 숫자의 조합으로 인간의 바둑 실력을 금세 넘을지 모른다. 체스에 이어 바둑마저 인공지능에 압도될 것이라는 예상 속에는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처럼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도 숨어 있다. 다행히 영화는 인간은 단지 결과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과정을 관조할 줄 아는 덕에 끝내 승리하는 것을 암시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대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감정적 소요를 통제하는 ‘기 싸움’의 영역은 기계가 가질 수 없는 인간의 기능”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 예다.

바둑계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자체를 환영하고 있다. 마치 1988년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할 당시 전국적인 바둑 열풍이 불었던 과거와 닮았다. 이후 바둑 인구는 23%에서 36%의 국민이 바둑을 둘 줄 안다는 통계가 나왔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번에는 국내에서만 머무는 바람이 아니다. 에릭 슈밋 등 IT 업계 거물조차 바둑을 미끼로 인공지능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바둑에 대한 이목이 집중됐다. 다행히 이들이 인공지능에 열광하는 순간이 감정과 감정의 만남을 지향하는 대체불가능한 바둑의 매력을 되새기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이재원 문화평론가는 “바둑이 개척하지 못한 서양에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바둑 열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데 바둑이 다른 형태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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